작년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 올해는 지카 바이러스인가. 최근 국내에서 첫 지카 바이러스 확진 환자가 나오면서 ‘바이러스 공포증’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 전문가들은 지카 바이러스가 메르스 등 호흡기 바이러스처럼 쉽게 확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대유행 조건 5가지로 압축
제마 지오히건 호주 시드니대 찰스퍼킨스센터 박사는 바이러스 권위자인 에드워드 홈스 시드니대 교수와 함께 대유행을 일으킬 수 있는 바이러스의 특징을 분석해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22일자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바이러스 203종을 대상으로 바이러스의 생물학적 특징, 감염자 수 등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대유행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은 바이러스의 특징은 5가지로 압축됐다. 우선 만성적인 감염을 일으켜야 한다. 이 경우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가 오랜 기간 많은 사람과 접촉하면서 바이러스를 널리 퍼뜨릴 가능성이 높다. 증상 없이 잠복기를 보내는 탓에 전 세계로 퍼진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대표적인 예다.
치사율도 낮아야 한다. 쉽게 말해 너무 독한 바이러스는 숙주를 빨리 죽게 만들어 다른 숙주로 옮겨가기 어렵다. 유행이 덜 되는 셈이다. 치사율이 낮은 호흡기 바이러스의 경우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게 만들어 현재의 숙주에서 다른 숙주로 재빨리 옮겨가면서 자신의 세를 확장한다.
모기 등 자신을 옮겨줄 매개체 없이도 공기나 비말(飛沫·작은 침방울)을 타고 곧장 숙주에 침투할 수 있는 능력도 대유행의 조건 중 하나다. 이런 점에서 지카 바이러스는 대유행 후보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다. 지오히건 박사는 “지카 바이러스는 성관계나 수혈 외에는 사람 간에 직접적으로 전파될 통로가 거의 없다”며 “지카 바이러스의 특성으로 미뤄 볼 때 감염 환자가 늘어나는 추세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구조적으로는 껍질(외피)이 없는 ‘나출형(naked) 바이러스’가 대유행에 더 유리하다. 외피가 있는 바이러스의 경우 외피가 파괴될 경우 외부 환경에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가령 외피가 있는 메르스 바이러스의 경우 건조한 환경에서는 외피가 오래 버티지 못해 결국 바이러스도 쉽게 죽는 반면 나출형인 노로 바이러스는 바닷물이나 공기 중에서 장시간 살아 있다.
유전체가 여러 개로 나뉘어 있지 않고 일체형인 경우에도 바이러스의 증식 속도가 매우 빨라 대유행을 일으킬 가능성이 더 높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경우 7개 또는 8개로 유전체가 분절돼 있다. 반면 전 세계 인구의 85%가 감염돼 있는 헤르페스 바이러스는 일체형 유전체를 갖고 있다.
○ 바이러스 돌연변이가 변수
연구진은 이런 5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면서 대유행을 일으킬 가능성이 가장 큰 바이러스로 음식물이나 분변을 통해 감염되는 ‘폴리오마 바이러스’를 꼽았다. 하지만 폴리오마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0%에 가깝고 증상이 거의 나타나지 않거나 미미해 현재로서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바이러스는 아니다.
문제는 돌연변이와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이다. 연구진은 “이번 분석을 통해 어떤 바이러스가 향후 대유행을 야기할지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용석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는 “HIV처럼 5가지 조건을 상당수 충족하는 바이러스도 있는 반면 이미 세계적으로 유행한 메르스, 에볼라,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처럼 1∼3개 정도만 부합하는 경우도 있다”며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대유행할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는 만큼 지카 바이러스 또한 조건에 맞지 않는다고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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