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국립간호대를 졸업한 마리아네 스퇴거 간호사(83)가 한국 땅을 밟은 건 1962년. 그의 나이 28세였다. 한센병 치료 시설인 전남 고흥군 소록도에 간호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행을 선택했다. 4년 뒤 마르가리타 피사레크 간호사(82)가 소록도를 찾았다. 두 간호사는 각각 43년 9개월, 39년 1개월 동안 소록도에 머물며 한센병 환자를 돌봤다.
소록도 주민 황모 씨(69)는 “48년 전 너무 아파서 죽을 위기에 놓였는데 두 분이 숟가락으로 음식을 억지로 떠먹여 20일 만에 목숨을 건졌다”며 “나에겐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했다. 두 간호사가 배설물은 물론이고 진물이 나는 상처를 맨손으로 치료하던 모습이 생생한 황 씨는 “두 간호사는 인간 사랑의 표본”이라고 말했다. 소록도에 있던 수많은 한센병 환자가 두 간호사 덕분에 몸과 마음의 상처를 씻었다. 마리아네 간호사와 마르가리타 간호사는 그렇게 ‘소록도 할매 천사’가 됐다.
대한민국이 두 천사의 헌신에 보답하기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 두 간호사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로 한 것이다. 17일 정부세종청사를 찾은 소록도성당 김연준 신부는 “다음 달에 두 분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는 위원회가 공식적으로 구성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들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게 된 계기는 이낙연 국무총리의 제안이었다. 올해 4월 당시 전남도지사였던 이 총리가 다큐멘터리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본 뒤 “두 분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자”고 말했다. 김 신부는 “두 분께 엄청난 빚을 졌고, 감사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 국격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위원회 위원장에는 김황식 전 총리가 내정됐다. 명예위원장에는 김정숙 여사를 추대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 총리도 김 여사를 명예위원장으로 위촉하자는 민간의 의견을 청와대에 공식 건의했다. 김 신부는 “청와대에서 아직 공식적인 답변을 내놓지 않았지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두 간호사는 2005년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섬을 떠났다. 오스트리아로 돌아간 직후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마리아네 간호사는 “우리 집, 우리 병원 다 생각나요. 하지만 괜찮아요. 마음은 소록도에 두고 왔으니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현재 두 간호사의 건강 상태는 양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리아네 간호사는 한국을 떠날 때 앓고 있던 대장암이 완치돼 지금도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요양원에 있는 마르가리타 간호사는 가벼운 치매 증상을 보이지만 소록도에서의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 신부와 박병종 고흥군수는 6월 오스트리아를 찾아 두 간호사를 만났다. 일행은 두 간호사의 소록도 삶이 담긴 사진첩과 건강식품, 태극기와 함께 한센병 환자, 간호사, 고흥군 직원이 쓴 편지 100여 통도 전달했다. 이 자리에서 마리아네 간호사는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다. 소록도에 잠시나마 머무를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나에겐 크나큰 행복이었다”고 말했다. 김 신부가 “두 분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겠다”고 말하자 마리아네 간호사는 “결코 큰일을 한 것이 아니다”라며 사양했다고 한다.
이들은 평생 소록도에서 봉사했지만 월급을 받지 않았다. 현재 유일한 생활비는 오스트리아 기초연금밖에 없다. 2015년 고흥군이 재단을 설립해 매달 1004달러를 지원하고 있는데 처음에 두 간호사가 한사코 거부해 힘들게 지원을 받도록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간호사는 고흥군이 추진한 특별귀화를 고사했다. 김 신부는 “두 분은 수녀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수녀가 아니라 간호사”라며 “이번 기회에 두 분께 간호사라는 진짜 이름도 돌려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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