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꽃’이라 불리는 노벨문학상은 매년 떠들썩한 추리게임을 불러일으켰다. 여타의 문학상과 달리 후보작을 공개하는 과정도 없고 후보자 역시 따로 발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상자 선정과정이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어 한림원 관계자의 아리송한 발언이나 역대 수상자의 국가, 장르 등을 분석해 ‘영미권이 아닐 가능성’ ‘시인이 될 가능성’ 정도를 추측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조차 빗나가는 경우가 많아서 결론은 늘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고’로 나곤 했다.
이런 비밀주의와 폐쇄성 덕분에 노벨문학상 후보는 오히려 영국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배당률을 보는 게 더 정확했다. 2006년 오르한 파묵 때처럼 수상자를 정확히 맞춘 적도 있었고, 발표에 임박해 순위가 뛴 작가가 수상자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당장 그 해가 아니어도 이곳에서 거론되던 작가들은 몇 년간 시차를 두고 상을 받았다. 때문에 일단 여기서 물망에 오르면 언젠가는 수상하리라 여겨졌다.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해 세계를 놀라게 한 밥 딜런도, 이 사이트에서는 꽤 오랫동안 단골 후보였다.
세계 최고 권위의 상이 거대한 도박판처럼 느껴지는 건 아이러니했지만 별 수 없었다. 작가들의 배당률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걸 보며 결과를 점쳐봐야 했다. 국내에서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손꼽혔던 한 시인도 한때 순위가 3위까지 오르며 ‘이번엔 혹시?’란 기대감을 높이곤 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연례행사처럼 그에 관한 기사가 쏟아졌다.
그런데 올해는 이 떠들썩한 ‘추리게임’이 실종됐다. 해당 시인의 논란 때문만이 아니다. 노벨상 가운데 유일하게 문학상은 아예 수상자를 내지 않기로 했다. 노벨문학상을 결정하는 스웨덴 왕립학술원 한림원의 추한 민낯이 드러나서다. 한림원 종신위원이 수상자 명단을 유출했다는 혐의가 드러난 데다, 그의 남편이 한림원이 소유한 아파트에서 성폭행을 저지르고 문화계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단 폭로까지 나왔다.
한림원은 초기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다 오히려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았다. 노벨상은 한림원 종신제 규정을 개정하는 방안과 도서관 사서, 일반 시민이 개방적으로 참여하는 문학상을 만드는 방향까지 고려하고 있다. 어떻게 결론이 나든, 그토록 폐쇄적으로 운영했음에도 끄떡없던 이 상의 권위에 치명적 균열은 불가피해진 셈이다.
공교롭게도 올해 우리는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였던 시인의 추문으로 떠들썩한 한 때를 보냈다. 막강한 권한을 남용하다 위기에 직면한 한림원의 처지가 좀더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폐쇄적 문화권력, 권위와 전통의 허울 아래 오점까지도 대충 묻히고 용인되던 시절이 끝났음을 묘하게 겹쳐진 두 사건이 보여주는 것 같다. 노벨문학상마저 사라진 유례없는 가을, 시대의 새로운 요구를 차분히 고민해야하는 건 우리 모두의 숙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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