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질한 자들은 가짜 무슬림”… 이슬람도 ‘反테러’ 손잡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2일 03시 00분


[佛 연쇄테러]
위기에서 빛난 무슬림 영웅들

“제 형은 무슬림(이슬람 신도)임에도 두 명의 사이비 무슬림에게 살해됐습니다. 이슬람은 평화와 사랑의 종교입니다. 형의 죽음으로 그 진정한 가치가 쓰레기통에 처박혔습니다. 제 형은 생전에 자신이 무슬림이란 것을, 또 프랑스 경찰로서 공화국의 가치, 자유 평등 박애를 수호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습니다.”

프랑스 파리 테러로 순직한 경찰 아메드 메라베 씨의 동생 말레크 씨(가운데)가 10일 기자회견에서 비통한 심정을 밝히고 있다. BBC 화면 캡처
프랑스 파리 테러로 순직한 경찰 아메드 메라베 씨의 동생 말레크 씨(가운데)가 10일 기자회견에서 비통한 심정을 밝히고 있다. BBC 화면 캡처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으로 순직한 무슬림 경찰 아메드 메라베 씨(42)의 동생 말레크 씨가 10일 파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말레크 씨는 “2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형은 집안의 기둥 역할을 하면서도 다정한 아들, 짓궂은 형, 너그러운 삼촌, 정 많은 동료로 살아왔다”고 말하다 흐느끼기도 했다.

그의 형 아메드 씨는 7일 동료 경찰과 함께 담당지역(파리 11구)을 순찰하다 테러 후 도주하던 범인들의 총격을 받고 쓰러졌다. 당시 그는 두 손을 들고 항복 자세를 취했음에도 테러범들의 조준사격으로 뒤통수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 그가 총을 맞는 장면이 TV 화면을 타고 전 세계로 방송돼 테러범에 대한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아메드 씨는 “우리를 죽일 거냐”고 묻는 테러범에게 “아니야. 친구(mate)”라고 답했는데도 확인 사살을 당했다고 영국 가디언지는 보도했다.

이후 아메드 씨가 테러범과 같은 알제리계 무슬림이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무슬림이 이번 테러의 가해자가 아니라 희생자라는 동정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한 무슬림은 트위터에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나는 숨진 경찰 아메드다. 샤를리는 내 신념과 문화를 비웃었지만 나는 그런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려다 죽었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는 ‘나도 샤를리’ 구호 못지않게 종교적 관용을 호소하는 ‘나도 아메드’라는 구호가 등장하고 있다.

창졸간에 형을 잃은 말레크 씨의 기자회견은 한 가족이 당한 비극적 슬픔을 타인에 대한 배려와 연대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 사회는 물론이고 지구촌을 감동시키고 있다. 그는 “이번에 벌어진 야만적 행위에 희생된 분들의 유가족과 깊은 연대의식을 느낀다”고 말한 뒤 “인종주의자, 이슬람 혐오자, 반유대주의자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무슬림과 ‘미친 사람’을 혼동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주십시오. 미친 사람은 피부색이나 종교와 상관없습니다. 무슬림이 싫다고 모스크(이슬람 사원)나 시너고그(유대교 회당)를 태우고 엉뚱한 사람들을 공격하지 말아주십시오.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유가족의 슬픔을 덜어주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똑같은 붓으로 먹칠하지 말아주십시오.”

테러범에 의해 잔인하게 숨진 무슬림 경찰 아메드 씨가 반이슬람 정서를 이슬람에 대한 연대로 전환시킨 숭고한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는 프랑스에서는 9일 최악의 인질극 현장에서 활약한 또 다른 무슬림 영웅의 이야기도 화제가 되고 있다.

9일 파리 동부 포르트드뱅센의 유대인 식료품점 ‘이페르 카셰르’에서 벌어진 인질극에서 북아프리카 말리 출신의 무슬림 점원 라사나 바틸리 씨(24)는 1층 매장에 무장 괴한이 들이닥치자 매장 안에 있던 15명의 손님을 지하 2층 냉장실로 데리고 내려가 숨겼다. 건물 구조를 잘 아는 그는 냉장실의 전원과 전등을 끈 뒤 “소리 내지 말고 여기 숨어 있으라. 밖으로 나갔다 다시 돌아오겠다”며 화물용 승강기를 타고 몰래 밖으로 빠져나왔다.

하지만 건물을 포위하고 있던 경찰은 바틸리 씨의 외모만 보고 테러 공범으로 여겨 수갑을 채우고는 한 시간 반을 붙잡아뒀다. 공범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돼 풀려난 바틸리 씨는 건물의 구조와 손님들이 숨은 곳의 위치를 알려줘 경찰의 진압작전을 도왔다. 진압작전 직후 풀려난 손님들은 바틸리 씨의 손을 잡으며 생명의 은인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했고 언론을 통해 그의 숨은 활약이 알려지자 ‘영웅’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이 식료품점의 유대인 점원 요안 코엔 씨(22)도 영웅적 희생의 귀감을 보여줬다. 그는 테러범 아메디 쿨리발리가 세 살 난 남자아기를 인질로 삼아 죽이겠다고 위협하던 와중에 쿨리발리가 계산대 위에 둔 총을 낚아채려다 범인이 먼저 쏜 총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사촌이자 점원으로 현장에 함께 있던 요나탄 씨의 전언).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무슬림#테러#이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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