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국가(IS)가 고토 겐지(後藤健二) 씨를 살해하는 동영상이 1일 오전 5시경 공개되자 일본 주요 신문들은 일제히 호외를 발행했다. 방송사도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긴급 뉴스로 내보냈다. ○ 모친, 눈물의 ‘기자회견’
일본 국민들은 고토 씨가 시리아 난민들의 참상을 알리고 인질로 붙잡힌 지인을 구하러 들어갔다가 참변을 당했다는 사실에 비통해하고 있다. 고토 씨는 지난해 10월 시리아에 들어가기 직전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시리아인에게 책임을 씌우지 말아주세요. 모든 것은 내 책임입니다”라고 말했다.
모친 이시도 준코(石堂順子) 씨도 아들의 죽음이 알려진 4시간 뒤인 오전 9시 40분경 기자들 앞에 섰다. 시종일관 눈물을 흘렸지만 메시지는 간명하고 힘이 있었다.
“아들이 긴 여행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전쟁 없는 세상을 꿈꾸고 분쟁과 가난으로부터 어린이들을 보호하려던 아들의 신념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이 슬픔이 증오의 사슬을 만드는 건 원하지 않습니다.”
정부를 향해 “아들을 꼭 구해 달라”고 호소했던 그였지만 이날 정부를 비난하는 말 같은 것은 없었다. 형 고토 준이치(後藤純一) 씨도 “동생의 석방을 위해 노력한 일본 정부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대체로 일본 내 민심은 정부가 할 만큼 했다는 분위기이다. 인터넷 포털 야후저팬에 게재된 기사 아래에는 ‘이번 사건에 온 힘을 다한 분들, 정말 수고 많았다’ ‘정부는 잘했다’ 같은 의견이 줄을 이었다. 전체 댓글 122건 중 정부를 비난하는 글은 10건 이하였다.
○ 이슬람을 진정 사랑했던 고인
숨진 고토 씨는 명문사립 호세이(法政)대를 졸업하고 히타치(日立) 그룹 자회사에 취직했지만 저널리스트의 꿈을 이루기 위해 퇴사했다. 1996년 ‘인디펜던트 프레스’라는 독립 제작사를 설립한 뒤 소형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중동, 북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지역을 뛰어다녔다.
분쟁지역에서 만난 어린이들이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소년병(兵)이 돼 전쟁터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을 가슴 아파하며 이들을 돕는 운동에 발 벗고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엔 시리아 어린이들에게 PC를 가르치는 프로젝트를 만들자며 2000달러(약 220만 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많은 이슬람 세력들은 그를 ‘이슬람의 친구’로 여겼다. 시리아 정부, 반정부 그룹 양쪽으로부터 취재 허가를 얻을 수 있었던 일본인 저널리스트는 그가 거의 유일했다고 한다. 마이니치신문 인터넷판은 그가 2010년 9월 7일 트위터에 올린 글을 공개하기도 했다.
“눈을 감고 꾹 참는다. 화가 나면 고함지르는 것으로 끝. 그것은 기도에 가깝다. 증오는 사람의 일이 아니며 심판은 신의 영역. 그걸 가르쳐 준 것은 아랍의 형제들이었다.”
이 글은 고토 씨 사망 소식이 전해진 1일 누리꾼들 사이에 널리 공유되면서 오후 8시 현재 1만 차례 이상 리트윗 됐다.
2010년 12월 2일 올린 글에는 언론인으로서의 투철한 사명의식이 절절하게 담겼다.
“취재 현장에 눈물은 필요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 극명하게 사실을 기록해 인간의 어리석음과 추함, 불합리함, 비애, 생명의 위기를 알리는 것이 내 사명이다. 하지만 괴롭다. 가슴 아프다. 소리 내어 나 자신을 타이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그는 위험한 지역을 다니는 자신을 말리던 첫 부인과 이혼하고 재혼했다. 이번에 IS에 붙잡힌 지인 유카와 하루나(湯川遙菜·참수 당함) 씨를 돕기 위해 갈 때는 태어난 지 2주밖에 안 된 둘째 딸을 뒤로하고 나선 길이었다.
○ 요르단 인질 생사는 오리무중
IS는 이번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자신들이 붙잡고 있는 요르단 조종사의 생사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교도통신은 1일 IS 사정에 밝은 요르단 내 이슬람정치운동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요르단 군 조종사는 30일 이미 살해됐다. 하지만 이게 알려지면 요르단 정부가 붙잡고 있는 IS 여성 테러리스트를 사형시킬까봐 발표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요르단 정부는 “IS가 두 번째 일본인 인질을 살해한 것을 강하게 비난한다. 요르단 정부는 그의 구출을 위해 노력했지만 IS 측이 거절했다”는 내용의 간단한 성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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