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현지 시간) 벨기에 브뤼셀의 자벤템 국제공항 출국장과 유럽연합(EU) 본부 인근 말베이크 지하철역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가 ‘이슬람국가(IS)’의 소행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IS가 이날 밤 자신들의 소행이라는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23일에는 이번 테러의 범인들이 지난해 11월 프랑스 파리 테러의 잔당임이 밝혀졌다. 아침 출근 시간대를 노린 이번 동시다발 테러로 31명이 숨지고 270여 명이 다쳤다.
벨기에 수사팀을 이끌고 있는 프레데리크 판 레이우 검사는 자벤템 공항 자살폭탄 테러범 2명 중 한 명이 이브라힘 엘 바크라위(30)이며 말베이크 지하철역 자폭 테러범은 그 동생인 칼리드 엘 바크라위(27)라고 23일 밝혔다. 레이우 검사는 자벤템 공항의 다른 자폭 테러범 1명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이날 오전 체포설이 돌았던 ‘IS의 폭탄제조범’ 나짐 라크라위(25)의 체포 사실을 부인했다.
바크라위 형제는 18일 체포된 파리 테러범 살라 압데슬람(26)과 함께 브뤼셀의 한 아파트에 은거해 왔다. 동생 칼리드 명의로 임대된 이 아파트는 이달 15일 벨기에 경찰이 급습하는 과정에서 압데슬람의 지문과 라크라위의 DNA가 발견된 곳이다. 파리 테러 이후 4개월 동안 숨어 다니던 압데슬람은 지문으로 꼬리가 잡혀 사흘 뒤 검거됐다. 바크라위 형제는 압데슬람과 같은 몰렌베이크 출신으로 각각 환전상 강도 및 경찰관 총격(2010년)과 차량 절도(2011년)로 9년형과 5년형을 선고받은 전과자이다.
벨기에 경찰은 22일 자벤템 공항 폐쇄회로(CC)TV에 찍힌 테러 용의자 3명의 사진을 공개했다. 벨기에 언론은 이 중 검은색 윗옷 차림의 2명이 바크라위 형제이고 오른쪽 흰 점퍼 차림에 모자와 안경을 쓴 인물이 라크라위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가운데 검은 복장의 인물만 바크라위 형제 중 형 이브라힘으로 확인됐고 나머지 2명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BBC가 보도했다.
공항에 설치된 폭탄은 원래는 3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벨기에 경찰은 22일 자벤템 공항 내에서 폭발하지 않은 3번째 폭탄을 발견해 해체했다고 전했다. 또 이들 3인조를 공항까지 태워준 택시 운전사의 제보를 받아 브뤼셀 서북쪽 스하르베이크 시에 있는 이들의 은신처에서 못이 포함된 폭발장치와 화학물질 그리고 IS 깃발을 발견했다. 인근 쓰레기통에선 이브라힘의 유언을 남긴 랩톱 컴퓨터도 발견했다. 유언장에는 가중되는 경찰의 체포망이 좁혀 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토로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이 3인조 폭탄테러범 사진에서 IS의 ‘지문(指紋)’에 해당하는 3가지 증거를 찾아냈다고 22일 보도했다. 첫째는 검은색 윗옷을 입은 2명이 모두 왼손에만 검은 장갑을 낀 점이다. 폭탄 전문가들은 이번 테러에 사용된 폭탄이 파리 테러에서도 사용된 ‘TATP(트리아세톤 트리페록사이드)’라고 단정했다. ‘IS 테러리스트는 한 손에는 AK-47 소총을, 다른 한 손에는 TATP 사제폭탄을 쥐고 있다’는 표현이 등장할 만큼 TATP는 IS가 애용하는 폭탄이다. ‘사탄의 어머니’라고도 불리는 TATP는 전기 자극을 가해 폭발시킨다. 이때 그 전선과 연결되는 기폭 장치를 손바닥에 장착하기 때문에 이를 감추기 위해 그 손에만 장갑을 끼는 경우가 많다.
둘째 3인조는 모두 카트에 큰 가방을 싣고 이동 중이었다. 폭탄 전문가인 지미 옥슬리 로드아일랜드대 교수는 파리 테러 때 조끼폭탄의 위력이 개당 TATP 1파운드였다면 이번 폭탄 테러에선 개당 TATP 30∼100파운드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자살조끼보다 더 많은 폭약이 들어가는 가방폭탄이 사용됐다는 것이다.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 못과 같은 날카로운 금속을 장착한 ‘못 폭탄’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이를 뒷받침한다.
셋째 3인조의 수염은 짧다. IS는 수염을 깎거나 다듬는 것이 서구 기독교의 문화라면서 허용하지 않지만 유럽 등 해외에서 암약하는 대원들에 한해 정체를 숨길 수 있도록 허락해준다. 이 때문에 파리 테러의 주범들은 세련된 유럽 남성의 외모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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