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권한 안주고 中 ‘AIIB 독주’ 의도
ADB와 달리 상임이사회 없이 운영… 2대주주 한국조차 경영권서 배제
투자 사실상 단독 결정 방침 논란
중국이 한국 정부에 자국 주도의 국제금융기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5000억∼7000억 원대의 자본금을 내되 투자 관련 결정권이 없는 ‘비상임이사’ 자격으로 참여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이 일본을 AIIB에 참여시킬 의도가 없는 상태에서 2대 주주로 유력시되는 한국에도 경영권을 인정하지 않고 중국 주도로 이 기구를 끌고 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3일 복수의 국제금융기구 관계자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AIIB의 경영지배구조를 총회, 집행부, 비상임이사회 형태로 구성하고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에 따라 각국이 낼 자본금 규모를 정한다는 내용을 담은 제안서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와 중동지역 20여 개국에 보냈다.
제안서에서 중국은 AIIB에 상근이사들로 구성된 상임이사회를 두지 않고 회원국 관계자들이 3개월에 한 번꼴로 만나 경영 전반을 점검하는 비상임이사회를 운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매주 상임이사회 회의를 열어 투자처 결정 등 주요 사항을 논의하고 투자계획을 집행부가 진행하도록 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다른 국제개발은행들과 완전히 다른 구조다.
중국은 또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최대주주, 즉 중국 정부가 지명하는 인물로만 구성된 AIIB 집행부에 투자 관련 의사결정을 맡길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AIIB가 무리한 투자를 강행해도 회원국들이 견제할 수 없게 된다.
아울러 중국은 AIIB 전체 자본금의 5∼7% 정도를 한국이 부담해 달라고 요청했다. AIIB의 총 자본금 한도는 1000억 달러(약 100조 원)지만 출범 때 회원국들이 부담하는 납입자본금은 법적 한도의 10%인 100억 달러 안팎이다. 이 중 중국이 절반인 50억 달러(약 5조 원) 정도를 대고 한국이 다음으로 많은 5억∼7억 달러(약 5000억∼7000억 원)를 부담해 달라는 것이다. 이런 분담금 규모는 국제개발은행에 한국이 낸 출자금 중 가장 많은 것이다. 한국이 AIIB에 참여하면 이 은행이 투자하는 아시아 지역 대규모 국제건설공사에 한국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어 해외건설 수주 등에서 큰 효과가 기대된다. 하지만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반대 등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많아 한국은 참여 여부를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지배구조 등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우려를 줄일 수 있는 방안 등을 놓고 중국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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