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투자의사 결정권이 있는 상임이사회를 두지 않고 의결권 없는 비상임이사회만 두려는 중국 측 계획에 대해 중국 전문가들은 “국제금융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를 중국이 분명히 드러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미국의 우려처럼 AIIB의 견제 및 감시 기능이 다른 국제기구에 비해 약한 문제가 있다 해도 경제적 실익이 큰 만큼 한국은 미국과 중국이 정면충돌하지 않도록 조정역할을 하면서 국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현재 중국 측 구상대로라면 AIIB 내부에는 ‘상임이사회’ 조직이 아예 없는 만큼 한국이 AIIB 전체 납입자본금의 5∼7%(약 5000억∼7000억 원)에 해당하는 돈을 내도 투자처를 결정할 권한은 갖지 못한다. 이에 대해 김한권 아산정책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은 “중국이 미국과 일본의 경제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입지를 강화하려는 포석”이라고 해석했다.
중국이 AIIB를 자신들 주도로 끌고 가겠다는 뜻이 분명해졌지만 이를 근본적으로 뒤바꿀 수단은 마땅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기존 국제개발은행인 아시아개발은행(ADB)이나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등 미국, 일본 중심의 기구에 대항해 단기간에 전세를 뒤집으려면 견제기능을 배제한 ‘독주체제’가 꼭 필요하다는 인식이 중국 내부에 강하게 형성돼 있어서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AIIB가 출범한 후 회원국들이 지배구조의 개선을 요구해 내부에서부터 점진적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AIIB의 지배구조가 국제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국의 이익을 감안하면 초기단계에 가입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봤다. 초기 출자국가에 지분을 나눠주고 기득권을 지속적으로 인정하는 국제기구의 특성을 고려할 때 나중에는 가입이 쉽지 않거나 뒤늦게 참가할 경우 불이익이 생긴다는 지적이다. 최필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팀장은 “AIIB를 통해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 건설에 참여하게 되면 침체일로에 있는 국내 건설업체들에 활로를 열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중국과 AIIB 관련 협상을 추진하면서 지배구조와 관련해 제기되는 우려를 줄일 수 있는 보완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미국 국무부 젠 사키 대변인이 8일(현지 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넘어야 할 문턱(Bar)’이라고 언급한 문턱이 ‘견제장치가 없는 이사회 구성’을 뜻한다는 점이 분명한 만큼 한국이 이 문턱을 낮추는 작업을 추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협상 전략과 관련해 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는 “미중 간의 갈등요소가 많은 만큼 한국이 중간에서 갈등을 조율하고 일부 해결하는 역할을 하며 점진적으로 AIIB 가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