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음 달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고위급회의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논의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드와 관련해 미국으로부터 제안도, 논의도, 결론도 없었다는 ‘3 No(부인)’ 대응법도 생명력을 잃게 됐다. 하지만 정부가 스스로 ‘전략적 모호성’을 폐기한 것인지, 떠밀려서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특히 18일 정부가 중국 주도의 국제금융기구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하기로 결정하면서 미국이 원하는 사드 문제와 중국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AIIB 문제를 사실상 맞교환한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온다.
○ 왜 지금 전략적 모호성 버렸나
전략적 모호성이 깨진 결정적인 계기는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차관보급)가 16일 한국에서 “사드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중시해 달라”고 공개 발언한 것. 정부의 ‘전략적 모호성’이 설 수 있는 입지가 순식간에 사라진 셈이다. 안보부처 당국자들이 그동안 “사드 논란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어떻게 억제하느냐가 핵심이다. 중국은 사드 반대보다 북핵 저지에 힘써야 한다”고 말해 온 것도 효용성이 다했다.
문제는 중국과 미국의 싸움에 떠밀려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인상을 남겼다는 점이다. 특히 안보 ‘컨트롤타워’로서 외교안보 부처를 거중 조정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이 자신의 전문 분야이기도 한 사드 문제를 적절하게 다뤄 왔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잇따른 ‘사드 공론화’ 발언이 조율 없이 나왔다는 점을 들어 “여당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부처 간 정책 조율이라고 제대로 됐겠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중국이 어깃장을 부리면 경제적 피해는 물론이고 중국이 의장국인 북핵 6자회담, 심지어 한중일 관계에까지 불똥이 튈 소지가 있는데 이에 대비한 치밀한 정책협의가 이뤄진 흔적은 잘 안 보인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17일 “주변국이 한국 안보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면 안 된다”고 말한 것도 적절성 논란을 남겼다. 같은 날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제3국이 한국이 주권을 갖고 결정할 문제에 (왜) 입장을 내는지 의아하다”며 유사하게 말해 한미가 손을 잡고 중국을 배격한 인상을 풍겼다. 외교부 당국자는 “국방부와 표현을 사전 조율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발언이 강경할 수밖에 없는 국방부의 특성상 사전에 표현까지 정밀하게 협의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중국, 청와대서도 사드 꺼낼 가능성
사드 논란에 불길이 번지면서 21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중일 3국 외교장관회의 초점도 한중 관계로 옮아가게 됐다. 2012년 4월 이후 약 3년 만에 열리는 회의의 주된 관심사는 과거사 문제 등 한일, 중일 관계였다. 하지만 사드 논란으로 주목 대상이 바뀌게 됐다. 특히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청와대 예방 때 이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도 있어 박근혜 대통령도 부담을 안게 됐다.
한미 간 사드 논의 본격화의 후폭풍도 예견된다. 지난해 한중 교역규모(2354억 달러)와 무역흑자(552억 달러)는 대미, 대일 무역량과 흑자를 합친 것보다 많다. 그만큼 중국은 한국을 겨냥한 경제적 대응 수단을 갖고 있다.
러시아도 사드를 반대하는 만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올해 중점 외교정책으로 정한 정부로서는 러시아의 협조를 끌어낼 대비책도 필요하다. 게다가 국내에는 사드 반대파의 목소리도 상존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