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판 다보스포럼’인 보아오(博鰲)포럼의 28일 연차총회 개막 연설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연설은 갈수록 커지는 중국의 국력과 세계 속 중국의 위상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시 주석은 중국이 아시아의 운명공동체 건설을 주창하면서 ‘일대일로(一帶一路·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대륙의 육로와 바닷길을 아우르겠다는 경제 구상)’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을 통해 새로운 경제 질서를 주도해 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침략 역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겨냥해 비판적인 메시지를 던졌는가 하면 “대국(大國)은 지역과 세계 평화 발전에 더 큰 책임을 지는 것이지 지역과 국제 사무를 농단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미국도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시 주석의 발언은 최근 ‘AIIB 전투’에서 미국에 완승을 거둔 직후여서 무게감은 특별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시 주석은 32분간에 걸친 연설에서 중국이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으로서 시장을 제공하고 투자를 주도하면서 아시아 개발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아시아 공동체 건설’은 중국이 주도하지 않는다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시사한 것이다.
공동체 건설을 위한 구체적인 과제로는 한중일 3국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간의 경제공동체, 아시아의 자유무역 네트워크 건설이라고 제시했다.
이번 포럼의 핵심 주제가 ‘일대일로와 AIIB’였던 것도 중국이 주도적으로 아시아를 견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시 주석은 “일대일로는 공허한 구호가 아니다. 이미 60여 개국과 국제단체가 참가에 긍정적인 의사를 표명했다”며 “독주곡이 아니라 합창곡”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포럼에서도 AIIB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뜨거웠다. 포럼에 참가한 러시아와 대만을 포함해 28일까지 덴마크 네덜란드 브라질 등이 가입을 선언해 참여국은 42개로 늘었다. 신화통신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동맹국인 호주도 곧 참가를 선언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높아지고 있는 이 같은 선진각국의 열기는 4조 달러가 넘는 막대한 외환보유액을 가진 중국의 경제력에서 얻을 수 있는 실리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시 주석은 연설에서 중·저속 성장을 특징으로 하는 중국 경제의 ‘뉴노멀(신창타이·新常態) 시대’에 대해 구체적인 수치들을 언급하며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는 “과거 두 자릿수 성장에는 못 미치지만 7% 성장은 경제의 총규모를 감안하면 대단한 것”이라면서 “각국에 더 많은 시장과 성장 투자 협력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앞으로 5년간 중국이 상품 수입 규모를 10조 달러 이상, 대외 투자는 5000억 달러 이상으로 각각 늘리고 외국 관광을 떠나는 중국인도 연인원 5억 명이 넘을 것”이라며 중국이 그만큼 잠재력 있는 시장이라는 점을 직접 홍보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이날 “냉전적 사유를 버리고 신(新)안전 이념에 입각해 새로운 공존과 윈윈을 모색하는 아시아 안전의 길을 찾아야 한다”며 경제를 넘어 ‘가치관’ 분야까지 세계를 주도하겠다는 메시지를 명확히 했다. ‘아시아 신안전 개념’을 강조한 것은 외부 세력의 배제를 염두에 둔 것으로 ‘아시아 회귀 전략’을 펴는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연설 서두에서는 “반파시스트 전쟁 및 중국 인민항쟁 승리 70주년을 맞아 역사를 보다 분명히 새길 때가 됐다”고 운을 뗀 데 이어 마무리할 때는 “역사를 되돌아보면 무력으로 자기의 발전 목표를 실현하려 했던 국가는 결국에는 모두 실패했다”고 재차 강조해 일본을 겨냥한 비판 메시지도 분명히 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미 의회 연설(4월 29일)을 앞두고 미일 간 신밀월 분위기가 퍼지는 가운데 아시아에서 지배력을 회복하려는 일본에 쐐기를 박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한편 시 주석은 ‘부물지부제 물지정야(夫物之不齊 物之情也·천지에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는 ‘맹자’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서로 다른 문명 사이에 우열은 없다. 오직 특색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해 아시아 내 각 문명 간 교류와 융화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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