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흔들리고 20초간 진동… 시민들 거리로 뛰쳐나와
원전 가동 중단-성당 첨탑 등 붕괴… 인명피해는 없어
23일 오후 1시 51분. 기자는 워싱턴 중심부인 14가의 외신기자 사무실이 들어서 있는 내셔널프레스빌딩(NPB)에서 일하고 있었다. 9층 사무실 복도를 걷는 순간 갑자기 건물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20여 초 동안 진동이 이어졌다. 사무실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비상구로 뛰기 시작했다. 기자도 9층에서 1층까지 정신없이 뛰어내려왔다.
밖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나와 있었다. 바로 앞 윌러드호텔에서도 투숙객과 직원들이 뛰어나왔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 등 정부청사가 입주해 있는 로널드레이건 연방빌딩 공무원들은 물론이고 의회 백악관 재무부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주요 관공서에 근무하는 직원들도 모두 밖으로 나왔다. 펜타곤도 예외가 아니었다. 경찰차의 비상 사이렌 소리가 도심을 메웠다. 사람들은 ‘9·11테러’ 같은 게 발생한 게 아니냐고 우려했지만 ‘지진’이었다. 서남쪽으로 약 148km 떨어진 버지니아 주 미네럴 지역의 지하 약 0.8km 지점에서 발생한 이날 규모 5.8의 지진은 버지니아, 조지아, 오하이오, 뉴욕 주와 캐나다 토론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서 감지됐다. 그동안 지진의 ‘무풍지대’로 알려진 워싱턴 주변 지역에서 ‘규모 5.8 지진’은 1897년 버지니아에서 발생한 지진 이후 114년 만에 최대 규모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그동안 워싱턴에선 볼 수 없었던 일이 벌어졌다.
지진 징후를 맨 처음 감지한 것은 워싱턴 시내 국립동물원 동물들. 원숭이들이 지진 발생 15분 전부터 요란하게 소리치기 시작했고 오랑우탄도 고함을 질러댔다. 홍학은 물에서 뒤죽박죽이 됐고 오리들은 안전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고 동물원 대변인 패멀라 베이커 메이슨 씨는 말했다.
워싱턴국립대성당의 첨탑 3개가 지진으로 무너져 내리자 성당에선 트위터를 통해 “상처를 입은 성당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호소했다. 워싱턴기념탑(워싱턴 모뉴먼트)의 첨탑 부분도 손상돼 국립공원 측은 점검을 위해 당분간 문을 닫기로 했다. 대사관이 밀집한 지역에선 에콰도르 대사관 건물에 금이 가고 일부 외관 벽이 무너지기도 했다. 조지타운대와 스미스소니언박물관 DC 연방법원도 모두 문을 닫았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국제통화기금(IMF)도 건물 안전점검을 위해 당분간 본부 운영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가족들의 안전을 걱정한 사람들이 동시에 휴대전화 버튼을 누르면서 휴대전화는 한참 동안 불통이었다. 전철은 시속 24km로 느림보 운행을 했고 메트로역은 귀가하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 때문에 퇴근시간에 앞서 북새통을 이뤘다. 미국 내 주요 철도망인 암트랙은 철로 점검을 위해 볼티모어∼워싱턴 열차를 감속 운행했다. 22일부터 개학한 워싱턴 시내 공립학교에선 수만 명의 학생을 건물 밖으로 대피시켰다. 인근 프린스타운 카운티에선 건물 안전점검을 위해 24일 공립학교 문을 모두 닫기로 결정했다.
원전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미국 지질조사국은 이날 지진의 진앙인 버지니아 주 미네럴과 16km 떨어진 노스 애너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 2기가 자동으로 가동을 멈췄다고 밝혔다. 비상 디젤 발전기 4대가 바로 작동하긴 했지만 1대는 작동하지 않았다고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밝혔다. 노스 애너 원자로 운영기업 도미니언의 짐 노벨 대변인은 “작동하지 않은 디젤 발전기는 대기 중이던 5번째 비상 발전기로 대체됐다”고 말했다.
지진 피해는 뉴욕까지 여파가 미쳤다. JFK 공항과 뉴어크 공항 관제탑에서 소개령이 내려졌고 9·11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WTC) 터에서 진행하던 건설작업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월가에선 트레이더들도 건물 밖으로 빠져나갔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에게 공소기각 결정을 내린 검찰의 기자회견도 지진 때문에 중단되는 소동이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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