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우산혁명’/고기정 특파원 현장 3信]
中국경절 맞아 시위대 참여 확산, 九龍반도 남단 점거… 긴장 최고조
“행정장관 2일까지 퇴진” 최후통첩… 시진핑 “一國兩制 꼭 수호” 경고
중국 본토를 향해 완전한 직접선거를 요구하는 홍콩 시민들의 도심 점거 시위는 중국 건국일(국경절)인 1일 최고조로 치달았다. 10만 명을 훌쩍 넘긴 시위대는 이날 본토에 붙어 있는 주룽(九龍) 반도 남단으로까지 ‘점령’ 지역을 확대하며 중국을 압박했다. 시위대는 또 2일까지 렁춘잉(梁振英) 행정장관이 물러나지 않으면 정부 청사들을 점거하겠다며 새로운 최후통첩을 보냈다.
○ 오성홍기에 등 돌린 시위대
시위 나흘째인 이날 금융 중심지인 센트럴(中環) 등에서는 아침부터 긴장이 감돌았다. 시위대가 홍콩 정부에 요구를 수용하라며 제시한 최후통첩 시한(1일 0시)이 지난 데다 7일까지 이어지는 연휴로 더 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시위에 참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전날 밤부터 새벽까지 쏟아진 폭우와 천둥, 번개도 시위대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시위대는 건물 1층 안쪽의 보행로 등에서 비를 피한 뒤 날이 밝자 다시 거리로 나섰다. 이날 오후에는 평소보다 일찍 정부청사 주변 등에 수만 명이 운집했다. 이들은 밤이 되자 휴대전화 플래시를 일제히 켜고 국경절 불꽃놀이가 취소된 홍콩을 ‘빛의 바다’로 만들었다.
홍콩 정부는 시위에도 불구하고 이날 오전 8시 완차이(灣仔) 지역의 골든보히니아 광장에서 국경일 국기 게양식을 강행했다. 새벽부터 광장 주변으로 시위대가 몰려들었지만 시위는 평화적으로 질서정연하게 진행됐다.
학생운동 지도자 조슈아 웡(黃之鋒·17) 군 등 1만여 명의 시위대는 아무런 실익이 없는 국기 게양식 방해로 홍콩과 중국 정부에 강제진압 명분을 줘서는 안 된다며 침묵시위를 벌였다. 국기가 게양되는 동안 일제히 등을 돌린 채 저항의 상징인 노란 리본을 묶은 손을 위로 교차해 ‘X’자를 만들었다. 시위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웡 군은 내외신 기자들에게 “중국 정부에 항의와 불신의 표시로 X자 표시를 했다”며 “혼란을 초래한 것은 홍콩 시민이 아니라 행정장관 직선제 약속을 어긴 중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그동안 20만 명이 넘는 시민이 시위에 참가했다.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것으로 낙관한다”고 밝혔다.
깡마른 몸에 목까지 쉰 웡 군은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한국 국민이 홍콩 사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인들의 지지를 부탁한다”고 특별히 당부하기도 했다.
센트럴과 완차이, 몽콕(旺角) 등 도심을 점거했던 시위대는 이날 주룽 반도 남단의 침사추이(尖沙咀)로 점거 지역을 확대했다. 이곳은 홍콩의 명동으로 불리는 쇼핑 중심지다.
○ 정치적 혼란 장기화 전망
시위대와 중국 정부 모두 물러설 뜻이 없어 보여 이번 사태의 출구는 보이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 ‘센트럴을 점령하라’의 발기인 중 한 명인 천젠민(陳健民) 홍콩중문대 부교수는 “문제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렁 장관이 물러나고 정치개혁 논의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학생 시위대는 국경일이 다 지나가도록 정부 측이 아무런 양보를 내놓지 않자 새로운 최후통첩을 전달했다. 홍콩 8개 대학 학생회 연합체인 홍콩전상학생연회(香港專上學生聯會)의 레스터 셤(岑敖暉) 부비서장은 이날 밤 기자회견을 자청해 “렁 장관이 2일까지 사퇴하지 않으면 홍콩의 주요 정부 건물 6, 7개를 점거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1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건국 65주년 기념식에서 “중앙정부는 흔들림 없이 일국양제(一國兩制)와 홍콩 기본법을 관철할 것이며 홍콩과 마카오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발전을 굳건히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홍콩을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홍콩 시위대에 보내는 ‘경고성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시위가 장기화하면 민주화 세력이 불리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단일 구심체가 없는 데다 경제적 타격을 명분으로 한 홍콩 내 친정부 세력의 반발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대응을 늦추며 고사(枯死) 작전에 돌입했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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