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오전 10시 반경 중국이 이틀째 위안화 평가 절하를 단행했다는 긴급 뉴스가 전해진 한국의 금융시장은 폭탄을 맞은 듯한 분위기였다. 각 시중은행의 딜링룸 전광판에 게시된 원-달러 환율은 이때부터 5분간 12원 이상 수직 상승(원화 가치는 하락)했다. 갑작스러운 환율 변동에 수출업체들의 주문량이 쏟아지면서 딜러들 간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외환은행 딜링룸의 서정훈 연구위원은 “어제까지만 해도 중국 정부가 위안화 환율 조정은 일회성인 것처럼 얘기해 오늘은 조용할 것으로 다들 생각했는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고 말했다. 》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 외환·금융당국 관계자들도 중국 당국의 의도를 파악하고 시장 영향을 살피느라 하루 종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정부 당국자는 “연이틀 세계 금융시장을 패닉에 빠뜨린 중국이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불확실성이 아주 높아졌다”면서 답답해했다.
○ 엔화 약세-위안화 절하에 원화 샌드위치 우려
중국의 이번 조치는 한국, 대만 등 주변 경쟁국의 실물경제는 물론이고 향후 글로벌 금융시장의 판도도 크게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우선 당장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상 시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초 금융계에선 큰 변수가 없는 한 9월에 미국의 금리인상이 시작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연준이 위안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달러화 강세와 수출업체의 경쟁력 하락을 우려해 이를 12월 이후로 미룰 가능성이 커졌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위안화 절하로 아시아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떨어지는 마당에 미국까지 금리를 올리면 신흥시장의 자본 이탈이 더 빨라질 수 있다”며 “연준이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중국이 환율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게 분명해진다면 주변 신흥국들의 통화가치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가뜩이나 엔화 약세로 고전해온 한국의 원화는 위안화 절하까지 더해져 ‘환율 샌드위치’ 상황을 맞을 우려가 있다.
1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 계획인 한은도 고민에 빠졌다. 당초엔 기준금리가 이미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아진 만큼 동결이 거의 확실시됐지만 각국의 통화전쟁이 본격화된다면 추후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한은 안팎에서 조금씩 나오고 있다.
이날 외환 당국은 중국의 움직임을 긴밀하게 관찰하되 상황을 좀 더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기획재정부 당국자는 “위안화 평가 절하의 영향으로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의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추세”라며 “한국이 이런 글로벌 추세를 바꿀 수 없고 바꾸려 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단기적 환율변동 추세에 개입할 뜻이 없음을 시사한 것이다. 미국의 금리인상 시점과 관련해 이 당국자는 “여전히 9월 인상 가능성이 높은 편”이라고 예상했다.
○ 글로벌 증시·원자재 시장 대혼돈
중국의 예기치 못한 환율 개입은 국내외 금융시장의 투자심리도 급격히 위축시켰다. 특히 원화 약세가 급격히 진행된 한국에서는 외국인 자금의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불안심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6거래일 연속 순매도세를 이어간 외국인들은 12일에도 한국 증시에서 3000억 원에 가까운 코스피 주식을 팔아치우며 ‘셀 코리아’ 행보를 이어갔다. 박형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위안화 평가 절하로 중국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의 통화가치 하락 가능성이 더 커졌다”며 “신흥국에서 자본 이탈 가능성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원자재 시장도 직격탄을 맞았다. 세계 최대 원자재 수입국인 중국의 수요 둔화 우려가 커져 원유, 구리, 알루미늄 등의 가격은 6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11일(현지 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4.2% 급락한 배럴당 43.08달러로 마감해 2009년 2월 이후 6년 반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런던 시장에서 구리와 알루미늄 가격도 각각 3% 안팎 내려 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중국의 환율 개입이 자국 경기 침체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원자재 가격이 앞으로도 추락을 거듭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국제유가는 조만간 배럴당 30달러 선으로 주저앉을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다만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안전 자산으로 꼽히는 국제 금값은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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