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슈바이처’의 안타까운 죽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5일 03시 00분


日원전사고지역 병원 80대 의사, 홀로 남아 진료하다 화재로 참변

 동일본 대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일본 후쿠시마(福島) 현의 시골 마을을 떠나지 않고 홀로 환자들을 돌봐왔던 80대 의사가 화재 사고로 숨져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4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0일 오후 10시 반경 후쿠시마 현 후타바(雙葉) 군 히로노(廣野) 정의 다카노(高野) 병원 관계자가 ‘원장 사택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고 소방 당국에 신고했다. 다카노 히데오(高野英男·81·사진) 원장이 혼자 살던 목조 건물 일부가 불에 탔고 안에서 남성 시신 1구가 발견됐다. 현지 경찰은 3일 유전자(DNA) 감식 결과 이 시신이 다카노 원장이라고 밝혔다. 정확한 화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병원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22km 떨어진 곳에 있다. 이 일대는 자율적 피난 대상인 ‘긴급 시 피난 준비 구역’으로 지정됐지만 다카노 원장은 100여 명의 입원 환자 중에 중환자가 많다며 홀로 남아 진료를 계속해 왔다. 지진 이전 인근에는 13개의 병원이 있었지만 다카노 병원이 유일하게 입원이 가능한 민간 병원으로 남았다. 내과, 정신건강의학과, 신경내과, 소화기내과 진료를 하고 118개 병상을 갖춘 병원이지만 다카노 원장이 유일한 상근 의사였다.

 다카노 원장은 그 뒤 비상근 의사의 도움을 받으며 계속 환자들의 곁을 지켰다. 병원 관계자는 “다카노 원장은 환자들을 진료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행복하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병원과 지역 주민들은 원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애도를 표하면서도 당장 진료를 맡아 줄 의사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선은 비상근 의사가 진료를 하고 60km가량 떨어진 미나미소마(南相馬) 시 의사들이 ‘다카노 병원을 지원하는 모임’을 만들어 자원봉사 의사 20여 명을 확보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정작 병원이 존속하려면 전속 상근 의사가 있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은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정부와 자치단체에 상근 의사를 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원장의 딸로 이 병원 이사장인 미오(己保) 씨도 병원 홈페이지에 “지역 의료의 불을 꺼뜨리지 않도록 분투하고 있다”라며 “‘어떤 때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해 나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을 잇고 싶다”라고 호소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동일본 대지진#원전사고지역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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