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철학자 시드니 후크는 시대적 흐름에 대한 태도와 대응 방식으로 지도자의 유형을 나눴다. ‘대세 주도형’은 흐름을 주도해야 직성이 풀리고 급회전도 잦은 반면 ‘대세 편승형’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다가 신중한 결단을 내리고 이를 우직하게 가져가는 스타일이라는 것.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대세 편승형’ 리더십에 가깝다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차기 총리는 ‘대세 주도형’의 성향을 나타낸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절충형으로 볼 수 있다. 한국 국내정치에서 김영삼,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대세 주도형과 비교할 때엔 ‘대세 편승형’으로 편의적으로 분류되지만 큰 정치적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정공법을 택한 점에선 ‘대세 주도형’ 특성을 보였다.
○ 원칙과 신뢰의 정면 돌파형
박 당선인의 정치적 트레이드마크는 ‘원칙과 신뢰’다.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으로 보수정당에서 남성 정치인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발휘한 데는 ‘박정희 후광’ 이외에도 고집스러울 만큼의 단호함이 한몫했다. 현직 대통령과의 세종시 대결에서 “약속은 지켜야 한다”며 국회 본회의 반대토론까지 나서 수정안을 폐기시킨 일이 대표적이다.
그는 ‘전략’이라는 말도 싫어한다. 2004년 차떼기와 탄핵역풍의 위기, 2011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와 4·11총선 그리고 18대 대선이란 정치인생 15년 동안 가장 절박한 3번의 순간에서 판을 뒤흔들 ‘전략’보다 진정성에 호소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자회견이나 대중연설을 할 때도 즉흥 발언은 거의 없다. 좀처럼 실수하는 법도 없다.
○ 인화를 앞세운 대세 편승형
시 총서기의 리더십은 ‘인화’다. 중국에서는 예부터 ‘관리가 새로 부임하면 3가지 새로운 일을 벌인다(新官上任三把火)’고 한다. 하지만 시 총서기는 반대였다. 1999년 푸젠(福建) 성 대리성장으로 부임했을 때 업무의 연속성과 사람 간의 관계를 강조했다. 그는 “지도자는 정무에 종사하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처리하는 데 정력의 70%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시 총서기는 1982년 허베이(河北) 성 정딩(正定) 현 부서기를 시작으로 30년 동안 정치를 했지만 손에 꼽을만한 성과가 없다. 하지만 2000년 8월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가 소개한 것처럼 그는 골목골목을 돌며 서민들을 직접 만났다. 이는 시 총서기가 나중에 계파 간 집단지도체제인 중국의 최고 지도자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이 됐다.
○ 임기응변의 대세 주도형
아베 차기 총리의 리더십은 ‘임기응변’이란 평가를 받는다. 국수주의적 강경발언을 쏟아내며 사상과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이미지를 연출하지만 실제로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처신을 바꾼다는 의미다.
2006년 처음 총리에 오른 그는 초기엔 한국, 중국을 먼저 방문해 관계를 개선하고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도 자제했다.
하지만 임기 중반을 넘기면서 그의 러더십은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측근들로 채워진 내각이 주요 정책을 놓고 제각기 목소리를 쏟아내면서 혼선을 빚기 일쑤였다. 그가 탈출구로 내세운 것이 바로 극우 세력을 자극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등 외교도 좌충우돌 우경화로 치달았다.
○ “상반된 중일 리더십에 전략적 신중함으로 대응해야”
동북아 지도자의 리더십 유형이 향후 3국 관계를 규정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동북아의 국내외 환경 변화 및 북한 문제 등 정세가 급박하게 움직이는 상황에서 국내 리더십을 분석한 잣대로 ‘아베 차기 총리가 주도하고 나서면 박 당선인과 시 총서기가 편승한다’고 도식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2인자를 두지 않고 최종 의사결정을 본인이 하는 박 당선인이 상대 지도자들의 특성을 유념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은 “박 당선인이 상반되는 아베 차기 총리의 임기응변 리더십과 ‘계파 간 화합을 끌어내는 인화력’이라는 시 총서기의 ‘만만디’ 리더십에 말려들지 않도록 전략적 판단에 따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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