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엔-달러 환율 97.5엔까지 상승… 원高 한국 이중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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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8일 03시 00분


“아베노믹스에 따른 엔저(円低)는 여느 엔저와 다르다.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조직적이고 본격적으로 엔화 약세를 밀어붙이고 있다.”(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

“원화가 강세인데 엔화까지 약세를 보이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양원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장)

한국 경제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후폭풍이 거세다. 무제한 금융 완화와 대규모 재정 투입을 골자로 하는 아베노믹스로 엔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7일 일본 도쿄(東京)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엔화 환율은 93.6엔(오후 4시 현재)으로 거래됐다. 장중 한때 94엔대로 상승(엔화 가치 하락)했는데 이는 2010년 5월 이후 2년 9개월 만에 최고치다.

경제 전문가들은 동아일보 설문에서 “아베노믹스가 촉발한 엔저 현상이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 않은 데다 각국도 ‘환율전쟁’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며 “한국은 엔저에 흔들리지 않도록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환율 체력도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전문가 90%, 한국 경제 타격

전문가들은 달러당 엔화 환율이 100엔을 돌파하면 한국 경제가 버티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설문에서 한국 경제가 감내할 수 있는 엔-달러 환율 구간으로 ‘95엔 이상 100엔 미만(38.9%)’이 가장 많이 꼽혔다.

전문가들은 엔화 가치의 하락으로 한국 경제가 입는 타격은 더 클 것으로 예상했다. 설문에서 전문가 90%는 ‘아베노믹스가 한국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진단했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수요가 많아 수출이 잘되던 2007년과 달리 지금은 세계경기가 부진해 수출에 따른 경기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일본 정부가 의도적으로 엔화 가치를 끌어내려 엔화의 하락 속도도 여느 때보다 가파르다”고 말했다.

이러한 ‘엔저 쇼크’가 단시일 내에 끝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심각성을 더한다. 설문에서 ‘일본 정부가 당초 목표한 대로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에서 벗어날 때까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25%나 됐다.

전문가들이 올해 예상한 엔-달러 환율의 최고치는 97.5엔. 이는 아베 총재가 당선된 지난해 9월 말(77엔대)보다 높지만 2007년 120엔대로 치솟았던 때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정규일 한은 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7년에는 세계 경기가 좋았지만 지금은 경기 회복세가 미약하다”며 “각국이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국 화폐의 평가 절상을 방치하거나 엔저 현상을 아무 저항 없이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엔-달러 환율이 2007년 수준까지 치솟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 아베노믹스가 환율 전쟁 촉발

이들은 아베노믹스가 환율전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일본의 정책이 다른 국가들의 인위적인 환율 방어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문가 중 80%가 ‘그렇다’고 답했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재정·통화 정책의 수단이 바닥을 드러낸 가운데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며 “아베 정부의 공공연한 엔저 정책과 맞물려 엔화가 단기간에 큰 폭으로 하락하는 데다 유로화는 급등하면서 국제 환율 갈등이 고조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나 유럽은 자국 경기 부양 차원에서 양적완화 정책을 추가로 실시해 환율을 방어하고, 신흥국은 선진국 자금 유입에 따른 자국 화폐 가치 절상을 막기 위해 금리 인하와 외환시장 개입 등 각종 정책 수단을 동원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한중일 3국간 환율 전쟁의 양상도 심상치 않을 것으로 보았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한중일은 경쟁적 산업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상대국의 환율 정책에 따라 수출 성과가 좌우될 수 있다”며 “중국 위안화도 이미 평가 절상을 늦추고 있는 등 3개국 사이에서 환율 방어가 강도 높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환율 전쟁이 극한까지 갈 확률은 적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했다.

김홍달 우리금융경영연구소장은 “환율 관련해 국제 공조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며 “환율 전쟁은 ‘특정 국가의 양적 완화→다른 국가의 방어적 대응→국제 공조에 따른 타협’이 반복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 “한국형 토빈세 도입은 신중해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형 토빈세(단기성 외환거래에 부과하는 세금)’ 도입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유입된 해외자본이 국내금융시장에 투자되기 전에 국내외환시장에서 거래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외국자본이 한국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시장이 위축되기 때문에 사전에 해외자본의 과도한 유입을 줄이자는 취지다.

‘연초부터 국내 환율 시장의 변동성이 큰데 외환당국이 추진하는 한국형 토빈세 도입에 찬성하는가’라는 질문에 ‘신중히 검토한 뒤 천천히 도입해야 한다’가 73.7%로 가장 많았다. 반면 ‘바로 도입해야 한다’는 전문가는 10.5%에 그쳤다.

이는 투기자본의 유·출입을 제어하기 위해 도입하는 토빈세가 세율이 높으면 금융거래를 위축시키고, 세율이 낮으면 투기 거래 억제에 효과적이지 않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한규 KDI 부연구위원은 “최근 환율 변동성 확대에 따라 환율 안정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지만 지나친 환율 안정의 추구는 변동환율제의 장점인 대외균형 유지에 제약으로 작용해 오히려 거시건전성을 저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원암 홍익대 교수(경제학)도 “한국판 토빈세를 도입하더라도 무역거래 등 우회수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어올 수 있어 보완책이 필요하다”며 “한 나라만 토빈세를 도입하면 상대적으로 자본이 거의 안 들어와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외환 기초 체력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도 다양하게 쏟아냈다.

김재영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한국의 금융시장은 신흥시장으로 분류돼 국제금융시장의 위험상황에서 그 시장의 위험성이 수익성에 비해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다”며 “우리나라의 금융시장을 신흥시장에서 선진시장(advanced market)으로 분류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베노믹스 긴급 진단 기획 설문 참여자 △양원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장 △김홍달 우리금융경영연구소장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 △김재영 서울대 경제학 교수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 △이한규 KDI 부연구위원 △강두용 산업연구원 동향분석실장 △박원암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정규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원장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 △오석태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함준호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채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조재성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 △하종수 외환은행 트레이딩 부장 △손정선 외환은행 경제연구팀 수석연구원

김유영·신수정·한우신·황형준 기자 abc@donga.com
#아베노믹스#엔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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