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틀째인 5월 11일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첫 전화통화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체결한 위안부 합의를 두고 견해차를 보였다. 당시 아베 총리는 “(위안부 합의는) 국제사회에서도 평가받고 있는 만큼 책임을 갖고 실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수용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다만 과거사가 양국 관계의 발목을 잡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불편한 통화를 주고받았던 양국 정상이 7일(현지 시간) 독일 함부르크에서 처음 단독으로 만났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는 첫 통화에서 마찬가지로 평행선을 달렸다. 그러나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공동 대응하고, 이명박 정부 이후 중단됐던 ‘한일 정상 간 셔틀외교’를 복원시키기로 했다. 4일 북한의 전격적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 이후 양국의 안보 환경에 대한 심각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 한일 미사일 대응에는 한목소리
두 정상은 북한 미사일 등 당면한 외교안보 위기 속에 긴밀한 공조체계를 갖추기로 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회동 뒤 브리핑에서 “한일 양국이 (북한 핵·미사일이) 급박하고 엄중한 위협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북핵 문제 해결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하기로 했다”며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평화적 방법으로 달성하기 위해 한일, 한미일 간 긴밀한 공조를 유지 강화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문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과 남북대화 복원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아베 총리도 이에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미 정상회담과 5일 한독 정상회담에서도 이 같은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해 공감을 이끌어낸 바 있다. 주요 국가들과의 연쇄 접촉을 통해 “남북관계에서 한국이 운전석에 앉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겠다는 복안이다. 또 한일 양국은 조속한 시기에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해 북핵 문제 해결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기로 합의했다.
○ 한일 셔틀외교 등 전략적 협력관계 구축
이날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는 중단됐던 한일 정상 셔틀외교의 복원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불편한 관계였던 한일 외교를 다시 본궤도에 올려놓을 여지가 생긴 것이다.
문 대통령은 “한일 양국은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할 뿐 아니라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친구”라며 “과거 역사적 상처를 잘 관리하며 미래지향적인 성숙한 협력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자”고 말했다. 아베 총리도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인 한국과 미래지향적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정상 차원의 소통을 이어가자”고 화답했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
이날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문 대통령의 조기 방일을 희망했고, 문 대통령도 아베 총리가 평창 겨울올림픽을 계기로 방한해 줄 것을 요청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 위안부 합의 이견 여전
이날 회동에서 아베 총리는 “위안부 합의의 이행이 필요하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문 대통령은 “한일관계를 더 가깝지 못하게 가로막는 무엇이 있다”며 “우리 국민 대다수가 정서적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양국이 공동 노력해 지혜롭게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답했다. 과거 정부의 합의를 전면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일정 부분 재협상이 필요하다는 뜻을 재차 분명히 한 것이다.
다만 문 대통령은 “(위안부 협상이) 한일 양국의 다른 관계 발전에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고 했다.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되 양국의 경제 안보 분야 협력도 함께 진행하겠다는 ‘투 트랙 전략’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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