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가능한 나라로”… 敗戰이전으로 회귀하려는 야망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28일 03시 00분


[토요판 커버스토리]더 강해진 中日 스트롱맨
아베는 왜 개헌에 집착하는가

“개헌 스케줄은 정해진 것이 없으며, 국민 이해를 얻도록 노력하겠다.” 중의원 선거 압승 다음 날인 23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밝혔다. 시종 신중하면서도 저자세로 임했지만 개헌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내보였다. 누가 봐도 그가 오랜 꿈인 개헌에 성큼 다가선 것은 분명해 보였다.

총선 승리의 기쁨은 25일 도쿄에서 열린 우익단체 ‘일본회의’ 관련 집회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총리의 최측근인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 보좌관은 “‘하늘의 때’를 얻었다”며 개헌 의지를 다졌다. 야마다 히로시(山田宏) 참의원은 “‘자위대의 명기’를 공약에 제시해 이긴 것이 최대의 승리”라고 했다.

○ 보수 저변에 흐르는 패전 부정 욕구

1946년 공포된 이래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일본의 평화헌법. 여기에 손을 대는 것은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보수 세력의 비원(悲願)이다.

아베 총리가 특히 개헌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유지(遺志)였기 때문이다. 기시 전 총리는 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돼 3년간 수감 생활을 했다. 평생 일본의 침략 전쟁이 ‘틀리지 않은 전쟁’이었다고 생각했고 평화헌법은 미국의 점령정책의 결과물이므로 “일본인의 손으로 반드시 개정해야 한다”는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이 미완의 과제를 완수해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고 싶은 것이다.

기시 전 총리의 생각에서 알 수 있듯 일본의 우익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패전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다. 우익단체 일본회의는 메이지(明治) 헌법을 가장 이상적인 헌법으로 생각한다. 일본이 세계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밖으로 뻗어 나가던 메이지 시대에 대한 향수가 작동한 탓이다. 일본 우익이 메이지 덴노(天皇)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을 합사한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에 집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보통국가’가 될 때도 됐다”

설사 패전을 인정하더라도 전후 72년이 지난 이제는 ‘전후(戰後)로부터 탈각’해 ‘보통국가’로 갈 때가 된 것 아니냐고 보는 보수 세력이 적지 않다. 현행 헌법을 패전국인 일본이 다시 세계 패권에 도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연합국이 채운 족쇄로 보기 때문이다. 보통국가란 필요에 따라 주권적 권리를 행사해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를 말한다.

아베 총리는 이에 따라 집권 이래 수시로 헌법 9조 개정 필요성을 제기해왔고 5월에는 9조는 그대로 두되 자위대의 존재를 추가하는 개헌안 로드맵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2015년 8월 내놓은 ‘전후 70년 담화’에서 “일본의 차세대에는 사죄의 숙명을 지워서는 안 된다”고 말해 더 이상 일본에 전쟁 책임을 묻지 말라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우익들은 평화헌법이 굴욕적인 것이라고 인식한다. 군대를 갖지 않을 것이며 전쟁을 영구히 포기하겠다는 평화헌법 9조로는 ‘보통국가’가 되기 어렵고 자국의 방위를 미국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1990년 8월에 발발한 걸프전은 일본 내에서 평화헌법에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됐다. 국제사회가 자위대 파병을 요청했지만 헌법 9조 탓에 보낼 수 없었다. 그 대신 130억 달러(현재 환율 약 14조6400억 원)라는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을 부담했지만 국제사회로부터 욕만 먹었다. 충격에 빠진 일본에서는 “역시 피를 흘리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무시당한다”는 말들이 돌았다.

○ 때맞춰 불어주는 북풍

국제질서의 변화도 일본의 개헌 바람에 힘을 실어줬다. 냉전이 끝나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시작됐다. 미국의 상대적인 국력 약화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려면 자체 방위력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정권이 중국의 부상과 팽창주의적 노선에 대항하기 위해 추진한 리밸런싱 정책이 일본으로선 군사력을 강화할 기회였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군비 확장을 가속화하고 집단적 자위권 인정, 안보법제 도입 등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넓혀나가고 있다.

여기에 세계의 경찰국가 역할을 벗어버리고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은 일본 우익들에 큰 기대감을 불어넣고 있다. 결국 일본의 군비 확장은 미국의 안보 분담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때맞춰 불어주는 북풍은 아베 정권의 명분을 살려주고 있다. 그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평양 전격 방문에 관방 부장관으로 수행했을 때였다. 당시 그는 북한에 대해 일본인 납치 문제를 이유로 강경론을 폈고 일본에서는 과거에 볼 수 없던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젊은 정치인’으로서 대중적 인기가 치솟았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경제 제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일본 열도 상공 너머로 쏘아 올리면서 일본인들이 느끼는 안보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이번 선거 기간에도 아베 총리는 가는 곳마다 북풍몰이를 거듭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은 개헌을 향한 아베호(號)에 순풍을 불어넣고 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아베#개헌#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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