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 日 첫 상륙…시민 5000명 모여 “아베 퇴진” 외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3일 22시 16분


“한국에선 촛불로 정권을 바꿨다. 일본도 촛불로 총리를 몰아내자”
23일 일본 총리관저 앞에 ‘촛불시위’ 첫 상륙, 시민 5000명 모여 “아베 퇴진” 외쳐
LED 촛불과 플래시 점등, 시민들 “스고이(멋지다)”, “키레이(예쁘다)” 감탄
모리토모학원 스캔들로 여론 악화, 아베 총리의 거듭된 사과에도 속수무책

“다들 이제 불을 들어올려 주세요. 플래카드는 내려 주시고요.”

23일 오후 8시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구 총리관저 앞. 약 5000명의 시민들이 주최 측의 요청에 따라 일제히 발광다이오드(LED) 촛불과 플래시를 점등한 휴대전화 등을 치켜들었다. 순식간에 관저 앞은 촛불바다가 됐다. 한국에서 역사를 바꾼 촛불시위가 일본에 처음 상륙하는 순간이었다. 시민들은 주위를 둘러보며 “스고이(멋지다)”, “키레이(예쁘다)” 등 감탄사를 연발했다.




촛불시위를 기획한 오쿠다 아키(奧田愛基·26) 씨는 “정말 멋진 광경이다. 역사적인 장면이 될지 모르니 기자분들도 사진을 잘 찍어 달라”고 했다. 시민들은 촛불을 흔들며 구호를 외쳤다. “아베 총리는 거짓말을 멈춰라”, “총리를 그만둬라.”, “(총리 부인) 아키에는 국회에 나와라.”




오쿠다 씨는 2015년 안보법제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행동)의 중심인물로 모리토모(森友)학원 스캔들이 본격화된 후 관저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촛불시위를 결심한 후 LED 촛불 3000개를 준비했다. 또 트위터를 통해서도 “촛불이나 라이트를 들고 모여 달라”고 호소했다.






이 호소에 응한 이들은 자발적으로 촛불을 준비했다. 관저 앞에서 만난 쓰노이 덴코 씨는 “한국에서는 촛불이 정권을 바꿨다. 멋지고 비폭력적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어 지인들과 자비로 2000개의 촛불을 사 왔다”고 말했다. 야광봉 500개를 가져온 호토 히로시(56) 씨는 “해외에 사는 이가 자신은 참가하지 못하니 대신 나눠 달라고 해서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은 비가 조금씩 내리는 와중에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사임’, ‘내각 총사퇴’ 등이 써진 플래카드를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복지 관계 일을 한다고 밝힌 노나카 도시히로(52) 씨는 “아베 정권이 끝장날 때까지 시위에 나오겠다”고 했다.



관저 앞 데모는 재무성이 문서조작을 인정한 12일 1000여 명으로 시작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날은 수천 명이 국회와 관저 앞에서 목소리를 높여 모리토모 학원 스캔들이 재점화된 이후 가장 큰 규모였다. 지역도 오사카(大阪) 삿포로(札幌)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관저 앞 시위와 지지율 하락으로 코너에 몰린 아베 총리는 이날 각의(국무회의)에서 “이번 일로 행정 전체의 신뢰가 손상된 것은 통한의 극치”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국유지 헐값 매각 당시 이재국장으로 사건의 핵심 인물인 사가와 노부히사(佐川宣壽) 전 국세청 장관이 27일 국회에 출석할 예정이어서 그의 증언에 따라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설상가상으로 국유지를 헐값에 분양받아 스캔들의 중심에 있는 가고이케 야스노리(籠池泰典) 모리토모학원 전 이사장은 23일 구치소에서 야당 국회의원들을 만나 “국유지 매각 협상에 대해 아키에(昭惠) 여사에게 하나하나 보고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따라 아키에 여사를 국회에 불러야 한다는 야당의 요구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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