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형준]2019년 5월 레이와 개막, 150년 전으로 되돌아간 일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8일 03시 00분


박형준 도쿄 특파원
박형준 도쿄 특파원
한바탕 축제를 치른 느낌이다. 1일 나루히토 일왕 즉위와 함께 레이와(令和) 시대를 맞은 일본은 무척 떠들썩했다. 전달 27일부터 시작된 열흘 연휴 기간이어서 더욱 그랬는지 모르겠다.

기자는 레이와 열기를 취재하며 2010년 1월 일본 공영방송 NHK가 방송한 ‘료마전(傳)’이 떠올랐다. 48부작 드라마로 일본 근대화의 일등공신 사카모토 료마(1835∼1867)를 그렸다.

19세기 중반 일본은 서양의 개국 압박 속에 사분오열돼 혼란스러웠다. 에도(현 도쿄)와 멀리 떨어진 변방인 도사번(고치현) 출신인 료마는 하급 사무라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막부를 무너뜨리고 새 시대를 맞아야 한다’는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료마가 서로 원수지간이던 사쓰마번(가고시마현)과 조슈번(야마구치현)의 동맹을 성사시키는 장면은 료마전에서 가장 흥미진진하다. 변방의 두 번은 힘을 합쳐 막부를 무너뜨렸고, 1868년 메이지유신을 탄생시켰다.

메이지유신은 여러모로 일본을 바꿨다. 메이지 일왕이 1000년간 머물던 교토를 떠나 에도로 입성하면서 일본의 수도가 바뀌었다. 그는 절대적인 힘과 권력을 지닌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지방 영주들의 힘겨루기는 사라졌고, 일본은 근대적 통일국가로 발전했다. 그 후 일본은 제국주의로 나아가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을 일으켰고, 1910년 한국을 강제 병합시켰다.

다시 시계를 현재로 돌려보자. 새 일왕을 맞아 일본 신문과 방송은 사라져가는 헤이세이를 아쉬워했고, 레이와 시대 희망을 언급했다. 아베 신조 정권이 보기에 눈엣가시 같던 각종 정치 이슈는 뉴스에서 사라졌다. 지난달 26∼28일 실시된 요미우리신문의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올해 최고인 54%를 기록했다. 정치 스캔들이 일순간에 정리돼 메이지유신 때처럼 일본 사회가 통일된 느낌이다.

자민당이 1일 내놓은 새 홍보물도 료마전을 떠올리게 만든다. 자민당은 사무라이 7명이 등장하는 수묵화풍의 홍보물을 온·오프라인에 선보였다. ‘신시대의 개막’이라는 표어도 넣었다. 가운데 사무라이는 정면을 향해 칼을 겨냥했다. 온라인에서 이 홍보물을 클릭하면 가운데 사무라이만 남고 그 옆에는 ‘제21대, 25대 자민당 총재 아베 신조’라는 설명이 나온다. 약 150년 전 조슈번과 사쓰마번의 칼을 찬 하급 사무라이들이 막부를 무너뜨리며 메이지유신을 이끌어내던 모습이 겹쳐진다.

아베 정권은 레이와 기대감을 활용해 7월 참의원 선거 압승을 목표로 나아갈 것이다. 목표 달성 후에는 개헌에 본격 나설 것이다. 궁극적으로 아베 총리가 항상 주장해 온 ‘아름다운 일본, 자랑스러운 일본’을 만들고자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보여줬던 불편한 ‘과거’에 눈을 감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아베 총리는 2013년 이후 전몰자 추도식에서 1993년부터 역대 총리가 언급한 ‘아시아 제국에 대한 가해 책임과 깊은 반성’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종전 후 약 70년간 일본인은 군국화를 어떻게든 막아왔지만 지금은 어려운 국면에 놓여 있다. 결코 넘으면 안 되는 성스러운 선(線)을 넘지 말아야 한다.” 레이와를 고안한 나카니시 스스무 오사카여대 명예교수가 지난달 20일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한 우려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나루히토 일왕#레이와 시대#헤이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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