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나루히토(?仁)일왕의 즉위를 대내외에 선포하는 즉위 의식이 22일 개최되는 가운데, 이번 행사가 국민주권주의와 정교분리를 정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21일 보도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내일 즉위의식에서 다카미쿠라(高御座)라고 불리는 단상에 올라 즉위를 선포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국민을 대표해 축사를 하고 입법·행정·사법 등 3부의 장과 함께 만세삼창을 한다. 다카미쿠라에는 왕위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삼종신기(三種神器) 중 검과 굽은 옥인 ‘검새(?璽)’가 놓인다.
아사히는 이 같은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의식이 위헌 논란이 있었던 아키히토(明仁) 전 일왕의 즉위 의식의 전례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왕은 1945년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 제국주의 헌법에서 신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졌지만, 패전 후 1946년 성립된 헌법을 통해 최고 권력자가 아닌 상징적 존재로만 자리매김했다.
그럼에도 패전 후인 1990년 진행된 아키히토 전 일왕의 즉의의식은 국민주권주의와 정교교분리 위배 논란을 일으켰다.
아사히에 따르면 일본 왕실의 규범을 정한 황실전범(皇室典範)에는 “왕위의 계승이 있을 때는 즉위 의식을 거행한다”고만 기록돼 있을뿐이다. 그러나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의식 절차는 전쟁 전 절차에 기반해 마련됐다. 의식의 세부 규정을 정한 ‘등극령’(登極令)이 전후 폐지되면서 후속 규정이 마련되지 않아, 폐지된 옛 등극령을 토대로 마련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아사히는 이 등극령은 메이지(明治) 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다카미쿠라와 그곳에 놓이는 검새, 그리고 총리의 만세삼창 등은 전후 마련된 헌법에 위배된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검새는 일본 왕가가 신의 자손이라고 주장하는 ‘천손강림’(天孫降臨) 신화에 나오는 세 가지 신기 이른바 ‘삼종신기(三種神器)’를 말하는 것이며, 다카미쿠라도 천손강림의 신화를 구상화한 것으로 종교색이 짙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 정부는 아키히토 일왕 즉위 때에 위헌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피하기 다카미쿠라에 검새와 함께 일왕이 공무 때 사용하는 도장인 옥새를 함께 놓아 종교색을 희석하려 했으며, 총리가 일왕 앞에서 만세삼창을 하는 위치를 일왕이 위치하는 다카미쿠라와 같은 높이게 되게 함으로써, 일왕의 신하가 아닌 국민의 대표로 보이게끔해 국민주권주의를 부각하려 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그럼에도 아키히토 전 일왕의 즉위식 이후 일본 국민들로부터 위헌소송이 잇따랐다고 한다. 오사카(大阪) 고등재판소(고등법원)은 1995년 3월 소송 자체는 기각했지만 위헌 논란에 대해 어느정도 수긍했다.
오사카 고법은 당시 판결에서 검새나 다카미쿠라에 대해 “종교적인 요소를 불식하고 있지 않다”,“정교분리 규정에 위반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을 일률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일왕이 다카미쿠라 단상에서 국민주권의 대표인 총리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서는 것에 대해 “현 헌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 점이 더 존재한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즉위식에 대한 최고재판소(대법원)의 헌법판단은 나와있지 않다.
아사히는 이 같은 위헌 논란이 있었던 아키히토 전 일왕의 즉위의식에 대해 소개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부는 이번 나루히토 일왕의 즉위의식에서도 전례를 답습하기로 했다고 비판했다.
황실연구자 다카모리 아키노리(高森明勅)는 “등극령을 대체하는 규정을 만들지 않은 것은 정치의 태만”이라며 “왕위 계승이나 퇴위와 관련된 의식에 대해 헌법에 합당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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