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히토 일왕 즉위 선언 “세계 평화 기원…헌법 따라 책무 다하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22일 20시 20분


즉위 선언

나루히토(德仁) 일왕은 22일 즉위식에서 부친의 평화주의를 계승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혔다. 다만 헌법 개정에 대해선 중립적 표현을 사용했다. 현재 일본에서 개헌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나루히토 일왕은 이날 도쿄 지요다구 왕궁 내 영빈관인 마쓰노마(松の間)에서 일본 국내외 2000여 명의 인사가 모인 가운데 즉위를 선언하며 “아키히토(明仁) 상왕이 일왕으로 30년 이상 재위하는 동안 항상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기원했다.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것을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1960년생인 나루히토 일왕은 전후 출생한 첫 일왕이다.

새 일왕의 즉위 선언에 대해 오쿠조노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부친의 평화주의에 대한 생각을 계승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일본 점령지를 순례하며 전쟁을 반성했던 부친의 움직임은 나루히토 일왕 시절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나루히토 일왕은 “국민의 행복과 세계 평화를 항상 기원하고 국민에게 다가가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국과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책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고 말하며 세계 평화에 대한 염원을 강조했다.

다만 5월 1일 즉위 후 첫 소감을 밝혔을 때와 마찬가지로 ‘헌법에 따라’라고 표현하며 개헌과 호헌(護憲)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현재 개헌을 ‘필생의 과업’으로 여기며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전쟁을 경험한 부친 세대 때는 ‘호헌’이 국민의 절대 다수 의견이었지만 지금은 호헌과 개헌 양론이 있어 중립적 표현을 사용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일왕의 선언이 끝나자 아베 총리는 축사를 한 뒤 “즉위를 축하하며, ‘천황(일왕) 폐하’ 만세”라고 외쳤다. 만세는 두 번 더 이어진 삼창이 됐다. 일본 측 참석자들은 아베 총리의 선창에 따라 “만세”를 복창했다. 국민대표인 아베 총리는 나루히토 일왕이 선 단상 ‘다카미쿠라(高御座)’보다 1m 정도 낮은 위치에 섰다. 이를 놓고 헌법에 규정된 국민주권 및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일왕 부부는 이날 오후 7시 20분에 180여 개국 대표로 참석한 400여 명의 해외 사절을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다. 연회는 일본 국내 인사와 주일 외국 대사 등 대상을 달리해 31일까지 3차례 더 열린다.

아베 총리는 일왕 즉위식을 계기로 21일부터 방일한 각국 대표들과 릴레이 회담을 시작했다. 이날 도쿄 아카사카 영빈관에서 이브라힘 무함마드 솔리 몰디브 대통령, 아웅산 수지 미얀마 국가고문 등과 회담했다. 25일까지 약 50명을 만날 계획이다. 일본 경시청은 20년 만에 처음으로 ‘최고경비본부’를 설치하고 2만6000여 명의 경찰을 투입했다.

일본 정부는 즉위식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에게 총 3명분(부부 및 수행원 1명) 숙박비와 현지 이동용 차량 1대 등을 부담한다. 외국 정상들이 단골로 도쿄 데이코쿠(帝國)호텔의 스위트룸은 1박당 200만 엔(약 2160만 원)이 넘는다. NHK 방송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외국 사절 체류비에 50억 엔을 사용했다. 일련의 즉위 의식에 사용되는 총 예산은 약 160억 엔으로 1989년 아키히토 일왕 때에 비해 약 30% 늘어났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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