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그리스 ‘과거사 앙금’도 투표에 영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7일 03시 00분


[그리스 ‘긴축 반대’ 후폭풍]‘긴축안’ 압도적 반대 이유는
2차대전때 3년간 식민지 경험
그리스, 최대 채권국 獨에 반감 커
“5년 긴축, 나아진게 없다” 반발도

그리스 국민투표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막판까지 접전을 보이던 여론조사 결과와 달리 반대표가 압도적이었다. 찬성 승리를 자신하던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의 호언장담이 무색해졌다.

외신은 경제 논리를 뛰어넘는 ‘과거사 앙금’에도 주목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리스는 독일의 식민지로 3년을 보냈다. 1941년부터 수많은 그리스 군인과 국민이 고초를 겪었고, 이에 그리스 정부는 올해 초 채무 협상안 조정을 요청하면서 나치 피해 배상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마틴 구즈먼 컬럼비아대 교수는 2일 허핑턴포스트 기고에서 “식민지 지배자들이 다시 한 번 이래라저래라 하고 있는 것”이라며 “신식민지적 상황에 그리스 국민이 공분했다”고 분석했다. 영국 BBC 등 외신도 “경제적 이유보다 역사적 배경이 반대 표심을 자극했다”고 전했다.

지난 5년간 쌓여온 그리스 국민의 채권단에 대한 불신과 패배의식도 한몫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오랜 긴축 정책에도 악화일로를 걷는 현실에 그리스 국민이 지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그는 5일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채권단의 협상안은 고혈을 짜고 또 짜내 병세를 악화시키는 중세시대 무지한 의사의 처방과 같다”고 밝혔다.

그리스의 20대 여성 도라 씨는 6일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채권단의 거짓말, 언젠가 풍요를 누릴 거라는 헛된 믿음, 5년간 이어진 긴축정책 등 모든 것에 지쳤다. 희망을 잃은 대다수 젊은층이 반대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일 언급한 그리스 부채 탕감 방안도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 국민은 반대 결정이 나오면 채무 탕감을 받는 쪽으로 긴축 프로그램이 조정될 거란 기대를 품었을 것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아르헨티나 학습 효과’도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2001년 디폴트를 겪은 아르헨티나는 긴축 프로그램을 따랐지만 실업률과 빈곤율이 치솟았고 국내총생산(GDP)은 곤두박질쳤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리스는 아르헨티나의 선례를 통해 구조조정으로 지속 가능성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분석했다.

그리스인의 저항 정신과 반대를 뜻하는 ‘오히(OXI)’의 역사적 힘도 작용했다. 영국 더타임스에 따르면 이탈리아 무솔리니 정권이 1940년 10월 28일 그리스로 진격하자 당시 이오안니스 메탁사스 총리는 ‘그렇다면 전쟁이다. 오히다’라고 외치며 저항해 이탈리아군을 막았다. 이후 그리스는 10월 28일을 ‘오히 데이’로 기념하고 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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