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금융 협상안에 국민들 분노… 치프라스 정치적 위기 맞아
개혁안 의회통과 되더라도 ECB 한도증액 등 산 넘어 산
1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회의에서 17시간 동안 밤샘 마라톤협상을 끝내고 돌아온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를 바라보는 그리스 국민의 시선은 차가웠다. 며칠 전 국민투표에서 보낸 환호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축제 분위기에 젖었던 그리스 국민은 허탈감과 함께 치프라스 총리에게 분노의 감정까지 느끼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아테네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집권당이자 치프라스 총리가 이끄는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의 깃발을 불태우는 과격 시위까지 벌어졌다. 그리스 양대 노총인 공공노조연맹(ADEDY)은 15일 24시간 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치프라스 총리 취임 이후 파업이 벌어지는 것은 처음이다.
파업이 예정된 15일은 그리스가 860억 유로(약 107조 원) 규모에 달하는 3차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넘어야 할 첫 번째 시한이다. 정년을 67세로 늘리는 연금제도 개혁과 부가가치세(VAT) 인상 법안, 노동관계, 민영화 등 4대 부문에서 합의된 개혁안을 모두 의회에서 통과시켜야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집권당 내 이탈 표가 예상되지만 개혁안이 의회에서 부결될 가능성은 없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개혁안 통과 이후에도 그리스의 앞날은 가시밭길이다. 최종적으로 860억 유로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받기까지 일정이 숨 가쁘게 돌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16일에는 유럽중앙은행(ECB)이 그리스 은행들에 대한 긴급유동성지원(ELA) 한도를 늘릴지 말지를 결정한다. ELA 한도가 증액돼야 그리스 은행들이 다시 문을 열 수 있다. 하루 뒤인 17일에는 유로존 국가들인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오스트리아, 에스토니아, 슬로바키아 의회에서 합의안 수용 여부를 결정한다.
그리스는 70억 유로 규모의 ‘브리지론’ 지원 협상에서도 더욱 가혹한 조건을 요구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는 20일 ECB에 35억 유로를 갚아야 하는데, 그리스가 이를 상환하지 못하면 ECB는 그리스 은행권의 생명 줄인 ELA를 중단할 수 있다.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의장은 “그리스의 브리지론의 법률적·재정적 문제가 복잡하다”며 “3차 구제금융 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약 4주가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반발이 커지면 치프라스 총리가 실각할 가능성도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내다봤다. FT도 개혁안이 통과된다 해도 치프라스 총리가 얼마나 오래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씨티그룹은 “협상안의 강력한 조건을 봤을 때 그렉시트 가능성이 상당하다”며 “구제금융 프로그램이 정한 경제 회복과 재정 적자 축소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위험이 커져 유로존 잔류가 위태로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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