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에 막힌 난민 수천명 항의… 일부 ‘지뢰밭’ 크로아티아 국경 이동
헝가리 국경봉쇄에 국제사회 비난… 메르켈, EU 특별정상회의 제안
“음식도 필요 없다. 국경을 열어라.” “우리가 제2의 알란 쿠르디(지중해 건너다 익사한 세 살짜리 시리아 꼬마)다.”
14일 헝가리가 난민을 막는다며 세르비아와의 국경을 봉쇄하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자 인근의 난민 수천 명이 절망에 빠졌다고 BBC 등이 15일 일제히 보도했다.
헝가리는 이날 주요 난민 유입통로인 남부 뢰스케의 세르비아 국경지대 전 구간(175km)에 4m 높이의 철책을 설치했다. 헝가리 정부는 “14일 하루에만 9380명이 들어왔다. 세르비아가 난민을 통제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다”며 국경 폐쇄 이유를 밝혔다. 헝가리 경찰은 16일 철책을 넘어 입국한 난민들을 향해 최루탄을 발사하기도 했다. 헝가리는 동부 루마니아 국경지대에도 철책을 세울 계획이다.
철책 앞에 운집해 있던 난민들은 자선단체로부터 받은 음식과 물을 던지며 거세게 항의했다. 상당수 난민은 국경 개방을 외쳤고 일부는 단식투쟁에 나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사진을 들고 “살려 달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시리아 알레포에서 온 사아드 씨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터키에서 쿠르디 가족과 같은 숙소에 묵었다. 우리는 시리아에서도, 이곳에서도 죽어가고 있다. 우리를 받아주지 않으면 우리가 제2의 알란이 된다”고 호소했다. 17세 아프가니스탄 소년 바시르 군은 “14일 밤이 유달리 추워 견디기 힘들었다. 어린아이들은 더 힘들 것”이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우회로를 택한 일부는 서부 크로아티아 국경지대로 이동하고 있다. 이곳은 1990년대 초 크로아티아 독립전쟁과 발칸반도 분쟁 등으로 5만 개의 지뢰가 매설된 ‘죽음의 땅’이다. 내전 종식 후에도 500명이 지뢰로 숨져 난민들의 희생이 우려된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와 관련해 조란 밀라노비치 크로아티아 총리는 16일 “크로아티아는 난민을 수용할 준비가 돼 있다. 독일로 가는 것도 돕겠다”고 밝혔다.
헝가리를 향한 비난도 빗발쳤다. 유엔난민기구는 “철책은 냉전시대 공산국가에 있던 ‘철의 장막’과 같다”고 비판했고,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도 “추잡하고 가혹하다”고 했다. 세르비아 정부는 “21세기 유럽에 철책을 설치하다니 믿기 어렵다. 인간 존엄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메르켈 총리는 15일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유럽연합(EU) 특별 정상회의를 열자”고 촉구했다. 이와 별도로 EU 내무장관들은 14일에 이어 22일 2차 회동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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