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의 오늘과 내일]메르켈리즘과 ‘세계 국민차’의 추락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9일 03시 00분


이종훈 정책사회부장
이종훈 정책사회부장
2010년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서울 개최를 며칠 앞두고 독일 베를린 총리 관저에서 나를 포함한 한국 특파원 몇 명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만났다. 당시 국제사회의 큰 이슈였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양적완화 조치와 경상규모 흑자 제한 제안에 대해 물었다. 메르켈 총리는 “양적완화에 반대한다. 싼값에 좋은 물건을 만들면 되는 것 아니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 상품의 경쟁력이나 올리라는 일침이었다. 값싸고 좋은 물건의 힘. 메르켈의 자신감이 부럽기도, 무섭기도 했다.

전후 최강의 독일을 이끌고 있는 메르켈은 모성애적인 소통 방식에 탁월한 소질을 보여 ‘무티(엄마)’로 불린다. 그러나 그는 공산 정권에서 ‘권력은 공포’라는 정치의 본질을 체감하며 성장했다. 그런 정치를 하기 위해 자녀까지 안 가진 여자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전 메르켈 총리 취재차 독일에 갔다가 만난 언론인 A 씨는 “무티는 메르켈의 반쪽에 불과하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은 킬러나 독거미로 부른다”고 말했다. 메르켈은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는 정적은 절대 용서하지 않으며 무능력한 참모는 해내기 어려운 일을 줘 스스로 고사하게 하는 잔인한 면모를 갖고 있다고 했다.

메르켈은 전임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와 달랐다. 아침 일찍 총리 집무실에 가보면 빈 포도주병 대신 서류를 완벽하게 검토하고 업무 지시를 내리는 총리만 있을 뿐이었다. 정상들이 종종 밤을 새우는 유럽연합(EU) 서밋에서 메르켈은 회담 말미까지 변함없이 꼿꼿한 자세로 버티는 독종이다. 끈기와 집요함에서 다른 정상들은 적수가 못 됐다.

‘국민차’라는 뜻의 폴크스바겐은 1937년 히틀러의 명령으로 설립됐다. 폴크스바겐이 지향한 건 효용성과 안정성이다. 벤틀리, 부가티, 람보르기니, 아우디 같은 최고급 브랜드를 거느린 폴크스바겐은 2010년대 들어 도요타를 무너뜨리고 글로벌 1위에 오를 비법을 고민했다. 디젤 엔진에 강한 이 회사는 경유 승용차의 난공불락 고지 같은 미국 시장을 뚫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폴크스바겐이 선택한 방법은 배출가스 저감장치 조작이었다. 우리에겐 어땠나. 배출가스와 소음 성적증명서 조작에 대해 “어차피 (유럽과 같은) 한국 기준을 만족할 것이었다”고 말했다. 시간과 돈의 가치 앞에서 독일의 완벽주의는 헌신짝처럼 내버려졌다.

강력한 국가 건설을 명분으로 독재와 전쟁, 학살을 합리화했던 독일의 2차 세계대전은 탐욕이 이성과 도덕으로 통제받지 않으면, 시스템과 매뉴얼이 합리화된 수단으로 악용되면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 보여줬다. 폴크스바겐 사태에는 마키아벨리즘의 어두운 잔영(殘影)이 어른거린다. 가장 독일적인, 독일의 대표 기업이 글로벌 무한경쟁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수단의 정당성을 무시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국가적, 집단적으로 거대한 목표가 세워지고 성찰이 없을 때 도덕과 가치는 모래성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폴크스바겐은 70여 년 만에 다시 가르쳐줬다.

연세대 박명림 교수는 너무 빠르게 진행된 ‘유럽의 독일화’가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한 중요한 배경의 하나라고 분석했다. 영국은 두 차례 세계대전과 통일 이후 상상을 초월하는 빠른 속도로 후유증을 극복하고 통합 유럽을 주도하기에 이른 독일이 두렵고 불편했다는 얘기다.

독일은 우리의 아픈 상처부터 숨 가쁜 성장, 꿈꾸는 미래까지 모두를 품어낸 나라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전부터 독일처럼 되고 싶어 했다. 항상 목표를 말했고 1등을 원했다. 우리는 독일이 이번 사태에 어떻게 임하는지, 또 폴크스바겐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잘 지켜봐야 한다. 독일처럼 되고 싶은 우리의 바람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종훈 정책사회부장 taylor55@donga.com
#g20 정상회의#메르켈 총리#버락 오바마#폴크스바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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