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하게 갠 일요일인 15일 오후. 동시다발 테러 발생 후 첫 주말 파리의 대표적 관광지인 몽마르트르 언덕에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길거리 화가들이 수많은 관광객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있던 파리 시민 델핀 브르오 씨(42)는 “우리는 테러범들의 위협에 절대 겁먹지 않는다. 다시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지하철 가판대에서 신문을 사고, 축구장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테러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파리는 천천히 일상을 되찾고 있는 모습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는 ‘나는 테라스에 있다(Je suis en Terrasse)’라는 구호와 함께 테러범의 총기난사에 표적이 됐던 카페 테라스에 나와 커피를 마시는 시민들의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다.
16일 오후 1시부터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공연장 등 테러 이후 폐쇄됐던 주요 문화 관광시설도 사흘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초중고교와 대학도 16일 일제히 수업을 재개했다. 한때 취소가 논의됐던 잉글랜드-프랑스, 독일-네덜란드 축구 경기도 예정대로 17일 열릴 계획이다.
89명이 희생된 ‘바타클랑’ 극장도 16일 록 공연을 예정대로 열기로 했다. 이 공연장 앞에는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공연장 앞에는 ‘잊지 않고,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단결해 이 야만적인 일에 대항합시다’라는 메시지를 적은 쪽지들이 놓여 있었다. 여덟 살짜리 딸과 함께 헌화하던 샤를로트 이자벨 씨(35·여)는 “부디 희생자들이 평화로운 세상에서 편안하게 눈감길 빈다”고 했다. 이날 오후 6시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는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미사에 1500여 명이 몰려 성당 밖 광장까지 가득 메웠다. 미사 봉헌 예절 시간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오르간에서 프랑스 애국가인 ‘라 마르세예즈’가 연주됐다.
파리 대교구장인 앙드레 뱅트루아 추기경은 미사강론에서 “신(神)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은 참수(斬首)가 아니다”라며 “한없이 약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라고 말했다. 이날 노트르담 대성당 앞 광장에서는 무장 경찰이 혹시 모를 테러에 대비해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성당 앞 광장에 있던 피에르 주아 씨(74)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 두려울 수 있지만 파리 시민들의 ‘연대(solidarit´e)’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민들은 폭죽이나 사이렌 소리만 나도 집단 공황 상태(패닉)에 빠지는 등 테러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15일 오후 5시 반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는 갑자기 ‘펑, 펑’ 하는 소리가 들려 광장 공화국 탑 앞에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모여 있던 시민 수백 명이 비명을 지르며 일제히 뛰는 소동이 벌어졌다. 꽃과 촛불 위로 넘어지는 사람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수백 m를 뛰어가 인근 레스토랑과 카페로 숨었다. 인근 운하의 차가운 강물에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다. 경찰 확인 결과 단순 폭죽 소리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인근 마레 지구에서도 한 여성이 “레퓌블리크 광장에 총을 든 남자가 나타났다”고 소리치자 카페 점원이 손님을 모두 카페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셔터를 내리는 일이 발생했다. 손님들은 30분간 카페 바닥에 엎드려 쥐죽은 듯 있다가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서둘러 귀가했다고 한다. 이 소동에 대해 마뉘엘 발스 총리는 16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지금은 전시(戰時) 상황이어서 언제나 냉정하게 최고의 경계태세를 유지해야 한다”며 동요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3개월로 연장하길 원한다는 뜻을 15일 의회에 전달했다. 30일부터 다음 달 11일까지 파리에서 각국 정상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를 감안한 결정이다.
한편 파리 시내 최대 이슬람사원인 ‘그랑드 모스케’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가 발생한 이후 문을 폐쇄했고 무장경찰들이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다. 압달라 제크리 이맘은 “이번 테러는 ‘이슬람국가(IS)’의 범죄이지 이슬람의 범죄가 아니다”라며 “이슬람에 대한 증오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신중한 처신을 부탁드린다”고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에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