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 뮌헨 테러가 정신이상자 소행이었다면 독일 수도를 노린 이번 베를린 테러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정치적 테러다.”
20일(현지 시간) 오전 9시 베를린 서부 번화가 카이저 빌헬름 기념교회 옆에서 만난 한스 카르베 씨(66)는 처참하게 부서진 채 견인돼 가는 트레일러트럭을 멍하니 바라보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내가 18일 밤 같은 시간 이곳에서 ‘글뤼바인’(따뜻한 와인에 향신료를 넣어 만든 술)을 마셨는데 하루만 늦게 왔으면 나도 희생자가 될 뻔했다”라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날 오후 8시 14분 독일의 ‘샹젤리제’로 불리는 서베를린 최고의 명품 거리 ‘쿠담 길’(군주가 말달리던 거리라는 뜻)에서 악몽이 시작됐다. 크리스마스 대목을 맞아 캐럴이 울려 퍼지는 평화로운 마켓을 갑자기 철근을 가득 실은 트럭이 덮쳤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길이 15m의 19t 트럭은 시속 65km 속도를 줄이지 않고 시장을 향해 돌진했다. 사람들과 가판대를 계속 치며 50∼80m 정도를 달리다가 3m 높이의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와 충돌한 뒤에야 멈춰 섰다. 이 사고로 최소 12명이 숨지고 48명이 다쳤다. 올해 7월 14일 프랑스대혁명 기념일에 프랑스 남부 해안 도시 니스에서 발생해 84명이 사망한 급진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트럭 테러를 연상케 하는 끔찍한 사건이었다.
사건 직후 한 시민의 신고로 사건 현장에서 1.5km 떨어진 전승기념탑 근처에서 체포된 용의자는 지난해 12월 오스트리아를 통해 독일에 들어온 파키스탄 출신 난민 23세 나비드 B다. 그러나 클라우스 칸트 베를린 경찰청장은 “구금하고 있는 이 남성이 트럭 운전사인지 확신할 수 없다”라며 경계 태세를 가동한다고 밝혔다. 용의자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만약 진범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 시민들의 불안감이 극도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트럭 조수석에서는 폴란드 국적의 한 남성이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 남성은 용의자에게 살해된 트럭 운전사인 것으로 추정된다. 독일 연방검찰은 테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독일 특공대는 20일 오전 4시 용의자가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진 난민센터가 있는 남베를린 템펠호프 공항 격납고 시설을 덮쳤다.
다음 날 테러 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상당히 격앙돼 있었다. 베를린에서 16년 동안 살았다는 슈테판 씨(30)는 경찰을 향해 “우리는 난민이 더 필요하다”라고 소리쳤다. 난민 수용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반어법으로 조롱한 것이다. 그는 “무슬림 난민들이 일부러 크리스마스의 평화로운 분위기에 베를린의 심장을 산산조각 내기 위해 이곳을 택했다”라며 “이게 모두 난민을 무조건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고성을 질렀다.
테러 용의자가 난민 출신으로 드러나면서 난민 수용에 적극적이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더욱 곤경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는 공격을 행한 범인이 독일에 망명을 요청한 난민으로 밝혀진다면 “한층 끔찍한 일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사건 현장에는 베를린 시민들이 촛불을 놓으며 추모 행렬이 시작됐다. 베를린 시는 크리스마스 마켓과 새해 행사는 보안을 강화한 채 예정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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