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경 ‘브렉시트’ 직감”…글로벌 금융시장 패닉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4일 16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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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경 직감이 들더군요. 개표가 40% 이상 진행된 상황에서 점점 탈퇴 득표율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 결국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가 되는구나 싶었죠.”

우리은행 딜링룸에서 외환 파생상품을 거래하는 딜러 A씨. 영국의 EU 잔류를 예측하며 느긋한 마음으로 출근했던 그는 24일 11시경부터 긴장감에 진땀을 흘렸다. 실제로 시장에서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날 미국 및 유럽 증시가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개인 및 기관투자자 대부분 브렉시트가 불발될 것으로 여겼던 터라 그 충격은 더욱 컸다. 딜링룸은 피 말리는 전쟁을 치렀다.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폭락했고 원-달러 환율이 30원 가까이 오른 1179.9원까지 급등했다. 문제는 충격파가 얼마나 이어질 지 ‘시계(視界)제로’라는 점이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일단 유럽, 뉴욕 증시를 살펴본 뒤 시장의 방향성이 정해질 것”이라며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라 좀처럼 예측을 못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날 개표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영국이 EU에 잔류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영국 국민들의 선택은 브렉시트였다. 개표가 진행됨에 따라 ‘탈퇴’를 택한 유권자 비율이 점차 잔류 쪽과 격차를 벌려가자 아시아 증시는 직격탄을 맞았다. 코스피는 전날보다 61.47포인트(3.09%) 하락한 1,925.24로 마감했다. 장 초반 2,001.55로 시작했던 코스피는 브렉시트 우려에 한 때 1,892.75까지 밀려나기도 했다. 코스닥지수는 전날보다 32.36포인트(4.76%) 하락한 647.16으로 마감했다. 장중 한 때 5% 이상 하락하자 한국거래소는 프로그램 매매 거래를 정지시키는 ‘사이드카’를 발동했다.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장중 8% 이상 폭락한 끝에 전날보다 7.92% 하락한 1만4952.02로 마감하며 약 4개월 만에 1만5000엔 선을 내줬다. 대만 자취안지수도 2% 이상 하락 마감했다.

글로벌 외환시장 역시 대혼란에 빠졌다. 24일 외환시장에서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장중 10% 가까이 폭락해 1.35달러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파운드화 가치가 달러화 대비 1.35달러 아래로 떨어진 것은 1985년 이후 30여 년 만에 처음이다. 하루 변동폭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8월의 6.5%를 깨고 사상 최대치를 나타냈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앞으로 파운드화 가치가 20% 이상 더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현재 1.35달러 밑으로 주저앉은 파운드화가 1.15달러 수준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외환시장에서도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9.7원 급등(원화 가치는 하락)한 1179.9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환율은 장중에 최대 30.1원까지 폭등하며 2011년 9월 23일(46.0원) 이후 최대 수준의 변동 폭을 보였다.

이날 원화를 비롯해 신흥국 통화는 일제히 달러화 대비 약세를 보였다. 세계 금융시장 및 경제 불안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면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급등하고 상대적으로 위험자산인 신흥국 통화 가치는 떨어진 것이다. 반면 일본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이날 한때 100엔 선이 무너지며 급락했다.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엔화로 글로벌 자금이 쏠린 결과다.

향후 국제 금융시장 혼란이 얼마나 지속될 지는 예단하기 힘든 상황이다. 이날 국내 시장 거래가 마무리됐지만 뉴욕과 유럽 시장의 거래 결과에 따라 다음 주에도 혼란 상황이 지속될 공산이 크다. 다른 유로존 국가들이 영국을 뒤이어 EU 탈퇴를 시도하게 되면 불안 심리가 확대돼 시장의 출렁거림이 장기화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후폭풍이 짧게 끝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 센터장은 “이번 주 들어 EU 잔류 쪽으로 무게가 기울며 코스피가 상승세를 이어온 만큼 반대급부로 하락세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며 “그러나 다음주에는 영향력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장윤정기자 yunjung@donga.com·정임수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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