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민은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하기로 했다.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기에 전 세계 각국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유럽 통합의 방향을 정반대로 되돌리면서, 다른 나라들의 애정 어린 충고를 무시하고 영국이 향후 부담해야 할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고 내린 결정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결과가 나온 직후 사퇴 의사를 밝혔다. 당연한 결정이다. 당초 그가 브렉시트를 무조건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2013년 이후 “지금의 영국-EU 관계는 분명히 문제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관계를 이끌어내고 이를 국민에게 신임투표의 형식으로 묻겠다”고 했다. 2월 EU 정상회의에서 끌어낸 합의안이 캐머런 총리가 말한 새로운 영국-EU 관계였다. 그러나 영국 국민은 이것이 불충분하다고 생각해 거부했다. 총리의 발밑이 무너져 내린 상황이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유럽 통합이 자기를 옥죄는 속박이요 굴욕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일까. 영국은 과거부터 유럽 세력 균형의 추로서 어느 한 유럽 국가가 유럽과 전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독일과 프랑스가 주인인 기존의 공동체에서 계속 마음이 불편하고 화났을 것이다. 대영제국의 영화를 기억하는 노년층이라면 1년에 물고기를 몇 마리나 잡을지, 투자자 보호는 어떻게 할지, 불공정 무역을 하는 국가나 외국 기업을 어떻게 벌할지도 스스로 정하지 못하는 ‘껍데기 같은 대영제국’에 분개했을 것이다.
영국은 미국이라는 든든한 친구가 있고, 영어권 국가들이나 과거 식민지 국가들과 남다른 관계도 있다. 영국이 유럽 국가만은 아닌 셈이다. 게다가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겠지만, 내가 좋은 상태면 이건 다 내가 잘나서다. 최근 몇 년 유럽 대륙보다 훨씬 나은 경제적 성과를 거둔 것을 보고 유럽 없는 영국을 상상할 만하다. 아무리 잔류가 유리하다고 지도층이 설득해도 그건 나의 이익은 아니고 저들의 이익이라는 불신도 있었다. 유럽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의 절규도 마음에 와 닿았을 것이다.
이제 브렉시트는 결정됐다. 앞으로 이 사건이 어떤 상황으로 전개될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명확히 얘기하기 어렵다. 다만 유럽이 불확실성과 리스크의 안갯속으로 들어간 것은 분명하다. 2009년에야 새롭게 만들어 넣은 EU 탈퇴 조항도 기본적인 사안만 정해져 있을 뿐 세부 절차로 들어가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백지 위에 남겨진 영국은 EU뿐 아니라 다른 제3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몇십 년 동안 브뤼셀에 맡겨 놓은 통상정책, 투자정책, 농업정책 등 수많은 권한을 되찾아오는 것은 일견 좋아 보이지만 이 모든 것을 다시 새로 만들어야 한다. 좀 과장하자면 나라를 만드는 것과 유사한 업무량이다.
일이 많아도 즐거운 일은 기꺼이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일은 하는 과정에서 좌표도 없고 등대도 없는 길을 가야 한다. 게다가 전 세계 경제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영국과 EU 경제의 어려움을 덤으로 안고 풀어 가야 한다. 브렉시트 찬성론자들이 주장하는 자유롭고 개방된 선진국으로 거듭나기까지 영국은 앞으로 한참을 가야 한다.
그럼, 우리에게는 어떤 악영향이 있을까. 일단 단기적으로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이 출렁거리는 것은 불문가지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더 걱정인 것은 실물 부문이다. 우리나라와 영국, 우리나라와 EU의 경제관계는 현재 상황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타격을 받게 된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기 전에 새로운 경제관계를 정립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영국이 너무 바쁠 것이다.
“브렉시트 하면 우리도 손해지만 너희 영국과 EU에 크게 밑지는 장사이니 하지 않는 게 좋겠다.” 이것이 그동안 다른 나라들이 갖고 있던 입장이었다. 이제 브렉시트가 되었으니 이렇게 바꿔서 생각해 보자. “그래, 기어이 했구나. 그럼 이런 벼락같은 충격을 너희가 자초했으니 우리가 너희에게 따질 게 많다. 기다리고 있어라.” 관계 재설정을 위한 협상을 한다면 보상금을 어떻게 받을지, 원산지 누적 조항은 어떻게 다룰지, 인력 이동 분야는 어떻게 할지, 차분히 앉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곰곰이 따져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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