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 양안(兩岸)에서 3일 간격을 두고 글로벌 경제에 의미 있는 두 광경이 연출됐다. 미주대륙에서는 현지 시간으로 26일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관문 역할을 해온 파나마 운하가 102년 만에 확장 개통했다. 건너편에서는 24일 영국이 43년 만에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사건이 벌어졌다. 두 광경은 근·현대 세계 경제사에서 묘한 대척점에 서 있다.
미국이 유럽 열강을 따돌리고 시공권을 획득해 1914년 완공한 파나마 운하는 ‘팍스아메리카나’의 출발점이었다. 미국이 다른 나라에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먼로주의에서 방향을 틀어 세계로 나가면서 처음으로 눈독을 들인 곳이기도 했다. 이후 선박들이 물건과 노동력을 싣고 대양을 오가면서 무역량은 폭발적으로 늘었고 각국은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점차 개방화의 길을 걸어갔다. 세계화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해온 데 파나마 운하가 적지 않은 단초를 제공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미국으로부터 1999년 말 파나마 운하의 운항권을 넘겨받은 파나마 정부도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확장공사를 벌여 왔을 것이다. 하지만 개통식을 축하하기 위해 행사에 참석한 세계 8개국 정상과 70개국 정부 대표는 대서양 건너편을 바라보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불안감에 젖었을지도 모르겠다. 영국이 EU 탈퇴를 통해 전후 시대를 관통해온 세계화에 반기를 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세계 금융시장은 요동을 쳤고 영국에 거점을 둔 글로벌 제조업체와 금융회사들은 속속 런던을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세계의 경제 주체들이 불안해하는 것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의 파장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어떤 방향으로 튈지를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국의 뒤를 잇는 국가가 나오면서 EU 체제에 균열이 오고 문을 걸어 잠그려는 국가가 늘어난다면 파장은 가늘면서도 오래 갈 수 있다. 원인이 분명했던 과거 경제위기와 달리 이번 사안은 세계 경제와 정치시스템의 문제점이 혼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27일 코스피가 소폭 상승세로 마감하고 원-달러 환율도 크게 오르지 않았다고 해서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 아니다.
파나마 운하 개통 이후 점차 만개해 온 세계화와 브렉시트가 새롭게 촉발시킨 신고립주의의 갈림길에 우리는 서 있다. 수출로 경제성장의 발판을 닦아온 한국으로서는 자칫 섣부른 판단과 대응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제 더 머뭇거리고 물러날 곳은 없다. 여기서 우리가 잘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면 우리 경제는 큰 어려움을 맞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각 부처 수장들의 상황인식이 이를 따라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주요 경제부처 장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사태가 실물경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국내 경제 주체들과 해외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의도적인 립서비스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다음 달 1일 발표될 월별 수출입동향에서 18개월 연속 수출 감소가 유력시되고 있다. 구조조정까지 겹친 상황에서 앞으로 얼마나 최장기 수출 감소 기록을 경신해 나갈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수출 회복이 여의치 않다면 서비스산업과 신산업을 통해 내수 시장을 키우는 경제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모두가 공감하는 해법이다. 문제는 허용된 시간 내에 얼마나 신속하게 행동에 나설 것이냐다. ‘지금의 어려움은 견딜 만하지만 내년 하반기가 진짜 걱정’이라는 한 최고경영자(CEO)의 넋두리가 요즘 머리를 계속 맴돈다. 그러잖아도 대비할 시간이 넉넉지 않은데 브렉시트로 시계 초침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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