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가 막 문을 연 2012년 7월.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 등 11명은 국회의원 본인 및 배우자의 4촌 이내 친인척 채용을 금지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18대 대선을 5개월 앞두고 여야가 ‘특권 내려놓기’ 경쟁을 벌이던 때였다. 개정안은 그해 8월 국회 운영위원회에 상정됐지만 이후 감감무소식이었다. 결국 19대 국회 임기가 끝나며 개정안은 자동 폐기됐다. 그로부터 4년 뒤 정치권은 마지못해 다시 ‘메스’를 들었다. 여야 가릴 것 없는 의원들의 친인척 보좌진 채용 ‘관습’이 곪아 터지고서야 나섰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계기로 정치 영역이 어떻게 나라 명운을 바꿀 수 있는지 고스란히 드러났다. 선동과 편 가르기가 아닌 희생과 통합을 말하려면 정치에 대한 신뢰 회복이 급선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번번이 ‘말잔치’만 하는 국회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30일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 만찬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특권 내려놓기와 관련해 “(여야 간) 공감대는 어느 정도 형성돼 있는 얘기”라며 “과거 에 보면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항상 나왔던 주제인데 실천이 안 됐을 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치개혁 바람 속에 문을 연 19대 국회에는 어느 때보다 많은 특권 내려놓기 약속들이 쏟아졌지만 대부분 휴지조각이 됐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제한하겠다는 약속이 대표적이다. 새누리당은 19대 국회 출범 직후 ‘6대 쇄신안’ 중 하나로 이를 내걸었지만 유야무야됐다. 여야가 이날 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에 합의하고, 국회의장 직속으로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자문기구를 설치해 관련 법 개정을 하기로 했지만 결실을 볼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무노동 무임금’ 공약의 맞불로 내놓은 민주당의 ‘세비 30% 삭감’ 약속도 말잔치뿐이었다. 당시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당 소속 의원 전원의 서명을 받아 국회의원 수당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인 운영위에 상정된 뒤 단 한 차례도 논의되지 못했다.
○ 정치 불신 해소 스스로 실천해야
전문가들은 정치 불신을 해소하려면 특권 내려놓기를 시작으로 정치권 스스로 윤리적인 자정 노력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체포·면책특권을 비롯한 국회의원의 각종 권한은 당초 의정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로 부여됐다. 하지만 이를 남용하거나 사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악용하면서 ‘특권’으로 변질된 것이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자초하는 국회의원 특권은 100여 개에 달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정치인들이 소명의식이 없는 게 가장 문제”라면서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국민 대표’들에게 국민들의 신뢰가 생기겠느냐”고 지적했다.
특히 20대 국회를 특권 없는 일하는 국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임기 초반에 국회 개혁 작업을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원들이 기득권의 늪에 빠져 스스로 권한을 축소하는 일에 소극적으로 변해버리기 때문이다. 20대 국회도 내년 대선을 치른 뒤에는 특권 내려놓기의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국회의장이 임기 초반부터 강력한 의지를 갖고 올해 안에 구체적인 작업을 진행해야 결실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은 “국회사무처에서 친인척 보좌관 채용과 관련한 윤리 규칙을 만드는 방법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국회가 특권을 포기하겠다며 말로만 ‘쇼’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본연의 임무인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회의 모습’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회의원 권한 중에는 정부나 행정기관에 대한 자료제출요구권이 있다. 의정활동을 위한 것이지만 이를 민원 해결을 위해 악용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한 중앙부처 관계자는 “한 의원실에서 몇 주 동안 수백 건에 달하는 광범위한 업무자료 제출을 요청했다”면서 “의원실로 찾아갔더니 그제야 보좌진이 ‘지역 민원을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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