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참의원 선거 결과가 나온 11일 오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자민당 본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베노믹스’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냈다.
그리고 “내일(12일) 바로 이시하라 노부테루(石原伸晃) 경제재생담당상에게 경제대책 준비를 착수하도록 지시하겠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 스스로 선거 승리가 철저하게 ‘아베노믹스의 성과’에서 기인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종합적이고 대담한 경제정책’을 선언했다. 조만간 10조 엔(약 112조 원) 이상 투입되는 대규모 경기부양 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내다봤다.
○ 기로에 놓인 아베노믹스
대규모 금융 완화와 과감한 재정 투입, 새로운 성장전략을 내건 아베노믹스가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일본인은 없다. 아베 총리가 취임하던 2012년 12월 26일 닛케이평균주가는 1만230엔이었는데 3년 반 지난 지금은 50% 이상 올랐다. 일자리 수를 구직자 수로 나눈 ‘유효 구인 배율’은 5월 기준 1.36으로 2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구직자 1명당 1.36개의 일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돈을 무제한 풀며 엔화 약세를 유도한 덕분에 지난해 대기업 실적도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자민당은 선거 과정에서 아베 정권에서의 경제 실적을 그래픽으로 만들어 ‘아베노그래픽스’라는 이름을 붙인 뒤 배포했다. 그리고 ‘이 길(아베노믹스)을 힘 있게, 앞으로’라는 구호를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되풀이한 끝에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잘나가는 듯했던 아베노믹스는 현재 신흥국 경기 둔화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암초를 만나 주춤한 상태다. 올 초에는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했지만 소비심리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여기다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기업도 투자를 기대만큼 늘리지 않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2일 “정부가 올해 일본의 실질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7%에서 0.9%로 하향 조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 국채 발행하며 총력전 펴기로
무엇보다 경기가 계속 얼어붙으면서 물가상승률은 3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하고 있다. ‘디플레이션 탈피’라는 아베노믹스 최대의 목표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선거 직후 일성으로 경제정책을 언급한 것은 경기가 계속 침체되면 자신의 꿈인 개헌도 물거품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이날 ‘미래에 대한 투자’를 키워드로 제시하고 △인프라 정비 △육아 및 간호 지원 확대 △노동제도 개혁에 힘을 쏟겠다고 강조했다.
인프라에 대해서는 “전국에 농수산물과 식품 수출기지를 만들고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크루즈 선박이 입항할 수 있도록 지방 항만시설을 정비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속 600km의 자기부상열차 리니어 신칸센 개통도 예정보다 8년 앞당기겠다고 했다. 보육 및 요양시설을 확충해 육아나 간호를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언급하면서는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를 일소(一掃)하겠다”고까지 말했다.
○ 재정 건전성 악화가 걸림돌
문제는 재원이다. 일본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4년 만에 신규로 국채를 찍을 계획이다. 현재 일본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30%를 넘는다. 다이와증권의 나가이 야스토시(永井靖敏)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국채를 발행해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은 일시적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재정 악화로 직결된다”며 “특히 항만을 만든다는 것은 무리다. 지금은 재정의 지속성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아베 총리가 인프라 투자를 보육 지원보다 먼저 언급한 것을 두고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상준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경제학)는 “아베 총리가 경기 부양을 통해 지지도를 확고히 한 뒤 개헌에 나서려는 것 같다”며 “보육시설 확충 등 중장기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투자는 바람직하지만 단기적인 인프라 투자를 먼저 내세운 것은 빨리 성과를 내고 싶어 실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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