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치를 뜨겁게 달군 ‘배신의 드라마’ 주인공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과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 중 승자는 존슨이었다.
테리사 메이 총리는 13일(현지 시간) 존슨 전 시장을 외교장관에 임명하고 고브 장관을 해임했다. 존슨 전 시장은 친구인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를 배신하고 유럽연합(EU) 탈퇴 진영 쪽에 섰다. 지난달 23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 승리 이후 총리 1순위로 꼽혔지만 동료인 고브 장관의 배신으로 꿈을 접어야 했다. 고브 장관은 메이 당시 내무장관과 총리직을 두고 겨뤘으나 2차 투표에서 3위에 그쳐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고브 장관을 지지해 온 니키 모건 교육장관도 이번에 해임됐다. 메이 총리는 법무장관 자리에 여성인 엘리자베스 트러스 환경장관을 임명했다.
EU 잔류파였던 메이 총리가 통합 카드로 존슨 전 시장을 내각에 합류시킬 것으로 예상했던 영국 언론들도 ‘외교장관’ 임명은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이는 “존슨 신임 외교장관은 그동안 공격했던 국가들에 사과하느라 시간을 다 보낼 것”이라는 자유민주당 팀 패런 대표의 조롱에서 드러나는 그의 ‘비(非)외교적’ 전력 때문이다. 존슨은 미국의 대선 후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정신병원의 사디스트 간호사 같다”고 비아냥대고,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부분적인 케냐인”이라 부르며 “선대부터 영국을 싫어한다”라고 깎아내렸다. 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협력하자고 주장하는가 하면 시리아 대통령을 향해 “브라보”를 외치는 등 돌출 발언을 해대 ‘영국판 트럼프’로 불린다. 장마르크 에로 프랑스 외교장관은 그의 입각 소식에 “존슨은 벽에 등을 기댄 거짓말쟁이”라며 “영국 정치의 위기가 왔다는 신호탄”이라고 비판했다.
메이 총리는 외교장관-신설 브렉시트부 장관(데이비드 데이비스)-무역장관(리엄 폭스) 등 외교 라인에 EU 탈퇴 강성론자들을 배치했다.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에서 정면 돌파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반면 내치 관련 부서는 EU 잔류 진영 출신의 최측근 인사를 임명해 친정 체제를 구축했다. 다우닝가 11번지의 주인공인 재무장관에는 필립 해먼드 외교장관을, 자신이 6년 동안 담당했던 내무장관에는 여성인 앰버 러드 에너지기후변화장관을 임명했다.
메이 총리는 취임 연설에서 “나의 미션은 더 강한 영국을 건설하는 것”이라며 ‘하나 된 국가’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는 취임 첫날부터 EU 지도자들과 날 선 신경전을 벌였다. 메이 총리는 EU 독일 프랑스 정상들과의 통화에서 “협상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양해를 구했지만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신속한 협상을 촉구했다. 메이 총리의 새 내각에 대해 마르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국가의 미래가 아니라 보수당의 내부 분열 해소를 위한 내각”이라며 “영국과 EU 모두를 해치는 위험한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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