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 시간) 실시되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역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일제히 휘청거리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은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국내 정국 혼란 속에 ‘트럼프 리스크’까지 겹쳐 살얼음판을 걷는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허 스타일의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 정책 불확실성 등이 더해져 세계 경제에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맞먹는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무엇보다 글로벌 경기 둔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트럼프식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면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등 신흥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 세계 금융 흔드는 ‘트럼프 리스크’
4일(현지 시간) 뉴욕 증시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전날보다 0.17% 떨어진 2,085.18로 마감하며 9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1980년 12월 이후 36년 만에 최장 기간 하락세를 보인 것이다. 금융시장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의 변동성지수(VIX)도 같은 기간 72.9% 급등해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최근 트럼프 후보의 지지율이 치고 올라와 미국 대선 판세가 대혼전의 양상을 보이자 글로벌 투자자들이 주식시장 등 위험자산에서 서둘러 발을 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신흥국 주식형 펀드에서 6주 만에 ‘팔자’로 돌아서 지난주에 1억1400만 달러를 순매도했다. 국내 증시에서도 2월부터 월간 기준 순매수 행진을 이어오던 외국인들이 이달 들어 나흘 만에 4000억 원 이상의 코스피 주식을 팔아치웠다.
국내 증시는 ‘최순실 게이트’와 ‘트럼프 리스크’ 등의 대내외 악재로 연일 하락했다. 최근 일주일 새 코스피 시가총액은 24조 원 가까이 증발했다. 코스피 하루 거래대금이 4일 연중 최저치인 3조 원대로 주저앉을 정도로 투자 심리가 바짝 얼어붙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은 트럼프가 대권을 거머쥐면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더 심해지면서 브렉시트급의 충격이 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바클레이스는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S&P500지수가 10∼13% 하락할 것으로, 씨티그룹은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 신흥국지수가 최소 10% 이상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노무라증권은 “트럼프가 이기면 금융시장 변동성은 브렉시트 때보다 심각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후보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원점 재검토, 주한미군 철수 검토 등 한반도 관련 정책의 강력한 변화를 시사하고 있어 국내 금융시장이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국내 수출환경, 엎친 데 덮친 격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와 트럼프 후보 모두 수위는 다르지만 보호무역주의 강화를 예고하고 있어 미국 대선 이후 한국을 포함한 세계 무역 질서에 일대 지각 변동이 예상된다. 특히 트럼프는 세계 최대 경제통합체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비롯해 한미 FTA 및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멕시코·중국 수입품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 등 극단적인 보호무역 조치를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 후보가 당선돼 미국이 맺고 있는 무역협정을 폐기 또는 개정하고 이에 맞서 중국마저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설 경우 글로벌 교역, 소비, 투자가 전반적으로 위축되면서 세계 경제가 장기 침체 국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등 신흥국 경제는 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 경제는 20개월 연속 수출이 감소한 여파로 기업 설비투자가 위축되고 민간 소비가 감소하는 악순환에 빠진 상황이다. 윤우진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가 집권하면 미국 통상 정책이 공격적으로 변해 대미 수출을 포함한 국내 주력 산업의 수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원화를 비롯해 중국 위안화, 멕시코 페소 등 신흥국 통화의 급격한 약세가 나타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미국과 중국의 통상마찰 등 주요국 간의 갈등과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 국제 교역이 더 위축돼 우리 경제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며 “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내수 부문을 확충하는 등 경제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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