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아기 또… 해 바뀌어도 멈추지 않는 ‘쿠르디의 비극’

그리스 향하던 난민보트 침몰… 시리아 출신 두살배기 숨져
2015년 지중해 난민 100만명 넘어
3771명 사망… 난민희생 70% 차지
여성난민 성적 학대도 심각

2일 그리스 아가토니시 섬 근처 고무보트에서 구조된 난민 아기를 해상난민구조센터(MOAS) 대원이 돌보고 있다. MOAS 제공

지난해 9월 터키에서 그리스로 해상 루트를 통해 밀입국하려다 익사한 세 살배기 시리아 꼬마 알란 쿠르디의 비극은 새해에도 되풀이됐다. 2일 그리스 아가토니시 섬 근처 바위에 난민들이 탄 고무보트가 부딪치면서 배에 타고 있던 두 살배기 남자아이가 물에 빠져 숨졌다. 시리아 출신 할리드로 알려진 이 어린이는 올해 첫 난민 희생자로 기록됐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그리스 어부들이 할리드의 시신을 건져냈고 아이의 엄마를 포함한 승객 39명은 구조돼 인근 사모스 섬으로 옮겨졌다. 이 중 생후 3개월인 갓난아기를 포함한 10명이 저체온 증세를 보여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이들은 이날 아침 거센 바람에도 불구하고 터키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리 마음의 준비를 한다 해도 여기서 이뤄지는 끔찍한 현실에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계속되는 난민 위기의 가장 어린 희생자 중 한 명의 얼굴을 목도했다. 비참한 조건 속에서 안전을 찾아 헤매다 숨진 수천 명의 비극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이날 사고 해역에 구조대를 파견한 해상난민구조센터(MOAS) 설립자이자 미국 기업가인 크리스토퍼 카트램본 씨의 말이다.

국제이주기구(IOM)는 지난 한 해 100만3124명이 지중해를 통해 유럽 땅을 밟았고, 이 과정에서 3771명이 숨졌다고 지난해 12월 31일 발표했다. 희생자 수는 2014년(3270명)보다 501명이 늘었다. IOM에 따르면 지난해 빈곤과 전쟁을 피해 고국을 떠난 난민 희생자가 세계적으로 5350명으로 추정되는데 이 중 지중해 희생자가 70%를 넘었다. 가장 끔찍한 루트는 리비아에서 이탈리아로 향하는 중부 지중해 루트로 지난해에만 2892명이 숨져 전체 지중해 루트 사망자의 77%나 됐다. 또 쿠르디와 할리드가 희생된 터키에서 에게 해를 거쳐 그리스로 향하는 동부 지중해 루트는 2014년 지중해 사망자의 1%였지만 지난해는 21%(805명)로 급증했다.

어린이 난민만 문제가 아니다. 밀입국 조직에 성적 학대를 당하는 여성도 상당수라고 뉴욕타임스(NYT)가 이날 보도했다. NYT는 독일 베를린의 난민수용소에 있는 여성 난민 수십 명을 인터뷰해 밀입국 중개인과의 성관계를 강요당하거나 남성 난민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여성이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아이 넷을 둔 30세 시리아 난민 여성은 남편이 가족의 밀입국비를 감당하지 못하자 자신을 중개인들에게 넘겨 밀입국에 성공할 때까지 3개월간 거의 매일 성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독일에 도착하자 이번엔 남편이 자신을 학대해 결국 가정이 파탄 났다. 유럽의 관문을 지키는 경비병이나 경찰도 난민 여성을 성적으로 유린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보고됐다.

서베를린 난민수용소의 심리 치료를 맡고 있는 주자네 회네 박사는 “내가 담당한 여성 44명 가운데 대부분이 이런 성적 학대에 희생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불면증, 충격적 사건이 되풀이돼 떠오르는 플래시백 증세로 고통받고 있다”고 밝혔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