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난민 위기를 겪고 있는 유럽연합(EU) 회원국들과의 긴급 정상회의를 소집한다고 독일 신문 빌트지가 16일 보도했다. 10여 일 뒤인 2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지만 난민 관련 갈등이 극심해 그때까지 기다리기도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유럽 난민전쟁의 중심에는 EU 빅4 국가(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가 있다. 이달 들어 새 정권이 출범한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난민 수용에 관해 양극단의 길로 달리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와 독일까지 난민정책을 놓고 으르렁대면서 2015년 난민 수용 결정 이후 난민 이슈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주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탈리아와 몰타 정부의 입항 거부로 9일 동안 바다 위를 떠돌던 난민 구조선 아쿠아리우스호는 17일 오전 스페인 발렌시아항에 입항했다. 발렌시아항에는 난민 629명의 입국을 환영하는 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스페인은 16일 지브롤터해협에서 고무보트에 타고 있던 난민 933명을 추가로 구조했다. 스페인 새 정부는 2013년 모로코와의 국경에 설치된 6m 높이의 철조망을 철거하고 불법 이민자에 대한 건강보험 혜택을 부활할 계획이다.
반면 이탈리아는 16일 리비아 난민 구조선 두 척의 입항을 거부하는 등 난민 수용에 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마테오 살비니 내무장관은 “지중해에서 난민 구조 활동을 펼치고 있는 외국 비정부기구의 선박은 이탈리아에 입항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난민 보트뿐 아니라 난민을 도와주는 구조단체 선박조차 입항을 불허한 것이다. 구조단체들은 반발하고 있지만 16일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 국민 59%가 난민 선박 입항 금지 조치에 찬성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15일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만난 데 이어 18일에는 베를린에서 메르켈 독일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갖는다. 유럽이 이탈리아에 과도한 책임을 지우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킬 계획이다.
지난주 아쿠아리우스호 입항 거부 결정을 두고 이탈리아를 맹공했던 마크롱 대통령은 15일 콘테 총리와 만난 자리에선 이탈리아의 어려움을 이해한다며 포용에 나섰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 모두가 난민에 더 많은 책임을 지도록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에 처음 입국하는 국가가 난민을 책임지도록 한 더블린 조약 탓에 지중해를 건너는 난민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이탈리아가 독박을 쓰고 있다는 불만을 의식한 발언이다. 프랑스는 또한 프랑스행을 희망하는 아쿠아리우스호 난민을 수용하기로 했다.
한때 앞장서서 난민을 받아들여 ‘난민의 천사’로 불렸던 메르켈 총리는 콘테 총리를 설득해야 할 입장이지만 제 코가 석 자인 상황으로 내몰렸다. 연정을 맺고 있는 자매당 기사당 대표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의 강경한 난민 정책 발표를 저지시킨 이후 후폭풍이 거세다. 메르켈 총리는 기사당과 만나 “이달 말 EU 정상회의 때 대안을 제시할 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설득했으나 기사당이 거부했다. 기사당과 타협에 이르지 못할 경우 대연정이 깨질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여론도 불리하다. 지난주 독일 여론조사기관 인사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5%가 국경을 강화하는 기사당의 의견에 지지를 보냈다. 이번 주 메르켈 총리는 마크롱 대통령과 만나 유럽 차원의 대책을 논의한다.
이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5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난민에 강경한 이탈리아 신임 총리는 훌륭하다”고 콘테 총리를 치켜세우며 EU 분열을 부추겼다. 반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난민들을 바다에 내버려두면 안 된다”며 난민 구조선 입항을 거부한 이탈리아를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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