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한기흥]파나마 운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8일 03시 00분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82km의 지름길을 처음 착안한 이는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였다. 그는 1529년 스페인의 초대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카를 5세에게 건의했다. ‘플루스 울트라(Plus Ultra·보다 더 멀리 나아가다)’가 좌우명이던 카를 5세는 진지하게 검토했지만 실천에 옮기진 못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최전성기를 연 그는 오스만제국, 프랑스와의 전쟁 등 다른 현안이 많았다. 게다가 그 시대엔 운하건축 기술도 그런 대역사를 하기엔 크게 미흡했다.

▷1880년 프랑스가 수에즈 운하를 개통한 기술진을 내세워 호기롭게 도전했으나 기술적 난관에다 말라리아가 겹치면서 약 2만2000명의 희생자를 내고 9년 만에 포기했다. 북미와 남미를 연결하는 새 물길을 내는 데 성공한 것은 미국이다. 1914년 8월 15일 10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으로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역사적인 물길을 열었다.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남미의 남단을 돌아 2만2500km를 가야 했던 뱃길이 9500km로 줄었다.

▷‘파나맥스(Panamax)’. 파나마 운하의 개통으로 이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새 기준이 마련됐다. 폭 32m, 길이 295m의 선박이다. 이보다 크면 운하를 통과하지 못하니 조선소에서 만들 때부터 규격을 염두에 둬야 했다. 26일 파나마 운하가 확장 개통되면서 폭 49m, 길이 366m까지의 배가 통행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 ‘포스트 파나맥스’급 선박 수요가 늘어나면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맞고 있는 국내 조선업계로선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반면 해운업계는 파나마 새 물길은 브렉시트에 이어 터진 악재라며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대형 선박의 통행으로 운임이 낮아지고 급기야 물동량 확보 경쟁이 불붙게 되면 운임료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세계 해운업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빈사상태의 해운업계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들은 두 대양을 연결한 발상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으로 살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한기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
#에르난 코르테스#플루스 울트라#파나맥스#파나마 운하#브렉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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