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에 감염된 지구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2일 03시 00분


美 흑백갈등-英 이민자 혐오 등 곳곳서 이상 징후

미국의 흑백 갈등, 유럽의 이민자 혐오 등 세계 곳곳에서 곪아 있던 ‘인종차별적 혐오’가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개인적 분노에 머물렀던 인종 혐오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순식간에 확산되면서 집단적이고 공격적으로 변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 시에서 7, 8일 발생한 백인 경찰과 흑인 용의자 사망 사건은 미국 전역에서 시위를 촉발하며 인종 갈등을 격화시켰다. 프레드릭 해리스 컬럼비아대 흑인정책사회연구소 국장은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에 “현재 미국은 잠재됐던 인종 갈등이 끓어오르는 시점에 이르렀다. 또 다른 ‘붉은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그가 말한 ‘붉은 여름’은 1919년 여름 발생한 미국 사상 최악의 흑백 충돌을 뜻한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후 혼돈 속에 빠진 영국에서도 이민자 혐오 사건이 터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9일 보도했다. 영국 링컨셔 주 보스턴에 사는 폴란드계 모니카 바긴스키 씨(32·여)는 NYT에 “‘이 외국인아, 넌 곧 쫓겨나게 될 거다’라는 등 수년간 들어보지 못했던 모욕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런던 해머스미스의 폴란드사회문화협회 건물 입구에서는 인종차별적인 낙서가, 케임브리지셔에서는 ‘더 이상 폴란드 기생충은 필요 없다’고 적힌 카드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인도 일간 힌두스탄타임스는 ‘브렉시트 이후 인종차별로 영국에 사는 인도인들도 영향을 받을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브렉시트로 인해 이민자들이 공격 대상이 될 것이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10일 보도했다.

인종차별 현상이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자 영국에서는 ‘안전핀 꽂기’ 캠페인이 시작됐다.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이들이 ‘누구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을 담아 옷에 핀을 꽂고 이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리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들은 반(反)이민자들을 지지층으로 끌어안기 위해 인종차별을 부추기고 있다. 이달 초 호주 총선에서 상원의원에 당선된 폴린 핸슨 ‘하나의 국가’ 대표(62·여)는 4일 당선 후 기자회견에서 “시드니 사람들은 밀려드는 아시아인들에게 두려움을 갖고 있다. (아시아인들이 주도하는) 테러가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가 구설에 올랐다. 핸슨 대표는 1990년대부터 아시아인의 호주 이민을 반대했던 인물이다.

독일에서는 우파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알렉산더 가울란트 부대변인이 아버지가 가나인인 독일 축구스타 제롬 보아텡에 대해 “사람들은 보아텡을 축구 선수로 좋아하지만 이웃으로 맞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인종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는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폭발력이 강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중동학)는 “인종차별 사건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회 전체로 확산돼 소수자들은 분노를 더욱 강하게 표출하고, 기득권은 이에 더 배타적으로 대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도 다문화사회가 돼 가고 있어 이민자에 대한 사회의 반감을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창원 IOM이민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에서도 경제가 어려울 때 사회적 분노가 이민자나 외국인에 대한 반감으로 표출될 수 있다”며 “호주처럼 인종차별 발언이나 폭력을 방지하는 규제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인종차별#흑백갈등#이민자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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