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상을 이끌 영국 대표 데이비드 데이비스 브렉시트 장관과 유럽연합(EU) 대표 미셸 바르니에 수석 협상가.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1996년 각각 영국과 프랑스의 유럽장관을 맡아 함께 일한 적이 있다. 또 한물갔다는 평가를 딛고 60대 후반의 나이에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계기로 화려하게 복귀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2019년 3월 29일까지 2년 동안 계속될 두 사람의 인생 마지막 정면 승부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 ‘스트리트 파이터’ 영국 데이비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데이비스를 ‘스트리트 파이터’라고 표현했다. 여러 번 뼈가 부러져 울퉁불퉁한 그의 코는 특수부대 경력과 함께 터프가이 이미지의 상징이다. 1948년 런던 남부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 게이 소년을 괴롭히는 깡패 무리와 혼자 맞서 싸웠다고 회상했다. 낙관적이고 자기 확신이 강한 그는 지난주 BBC 토론에 출연해 넥타이를 삐딱하게 매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협상 상대인 바르니에를 친구 부르듯 ‘미셸’이라고 불렀다.
정치적으로는 풍운아다. 지난해 메이의 호출을 받기 전까지 거의 10년간 잊혀져 있었다. 2005년 마이클 하워드 대표 후임으로 보수당 대표에 도전한 그는 초반에는 앞섰으나 데이비드 캐머런에게 역전당했다. 캐머런은 야당 시절인 2008년 데이비스를 예비 내무 장관에 임명했다. 하지만 데이비스가 시민 자유를 침해하는 반(反)테러리즘 법안에 반대하며 의원직을 사퇴해 보궐선거를 유발하자 격노해 장관에서 해고했다.
협상 전략은 치밀하다. “팩트가 우선이고 결정은 두 번째다” “장전-조준-발사를 해야 한다. 장전하고 바로 쏘면 안 된다”는 금언을 좋아한다. 2년 안에 합의에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비상계획도 준비하고 있다.
○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 EU 바르니에
바르니에의 인생은 EU와의 굴곡진 인연으로 점철돼 있다. 그의 생애 첫 투표는 1972년 영국의 유럽경제공동체(EEC·현 EU) 가입을 허용할지 묻는 프랑스 국민투표였다. 그는 21세의 나이에 찬성 캠페인에 참여했고 영국은 회원국이 됐다. 2004년 프랑스 외교장관이 된 그는 EU 통합 범위를 경제를 넘어 대통령과 외교장관을 신설해 외교, 정치 통합으로 강화하는 EU 헌법 개정을 프랑스 국민투표에 부쳤다.
이번에는 예상 밖의 부결. 법안을 통과시켜 EU에서 주도권을 쥐려 했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화가 나 2005년 그를 해임했다. 2년 뒤 유럽의원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한 그는 2014년 유럽 집행위원회 의장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장클로드 융커 현 위원장의 배려로 안보 국방 특별 자문가로 임명됐지만 무보수 명예직으로 사실상 은퇴만 바라보고 있었다. 브렉시트는 그에게 새로운 기회다.
2010년부터 EU 역내 시장 및 서비스 담당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영국의 금융 거인들과 맞서 EU의 금융 통제력을 강화하고 은행가들의 보너스에 상한선을 두는 등 강경 정책들을 주도했다. 그래서 영국 언론은 그를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라고 불렀다. 협상엔 완고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정작 주변인들은 수다쟁이 아저씨로 부른다. 드골주의자이지만 EU에는 찬성하고, 우파 성향이지만 공화당에 매몰되지 않는 실용적인 성격을 가졌다. 영국과의 협상에 앞서 27개 회원국의 의견을 어떻게 통합하느냐가 가장 큰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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