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만 있고 대안 없는 브렉시트… 민주주의의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4일 03시 00분


NYT “타협 통한 갈등해결 사라져”
금융위기후 불평등 심화가 원인, 반대정서 자극 포퓰리즘 득세
메이 “野와 만나 합의점 찾겠다”… 소프트 브렉시트로 선회 시사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는 불신과 반대가 기반인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달 29일 “영국 유권자들은 ‘어떤 브렉시트의 대안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주저한다. 하지만 ‘무엇에 반대하냐’고 물으면 테리사 메이 총리의 합의안이나 ‘노딜(No deal) 브렉시트’ 등 명쾌한 대답을 내놓는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의회 민주주의의 본산’ 영국을 포함해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가 바뀌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민주주의가 ‘현상에 대한 반대’나 ‘기득권 세력 혹은 상대 정당에 대한 반대’로 다시 정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NYT는 “토론과 타협으로 갈등을 풀고 해결책을 찾는 민주주의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찬성 여론이 우세했던 이유는 EU에 대한 영국인들의 강한 반발심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국 정부와 의회는 이후 2년 반 동안 ‘EU 반대’를 외치며 시간만 끌었다. 정부의 브렉시트 합의안은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한 채 여전히 표류 중이다. 영국 정치에선 리더십도 실종됐다. 메이 총리와 제1야당인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의 지지율은 낮다. 대안으로 떠오르는 정치인도 찾기 어렵다.

프랑스에서 유류세 인상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노란조끼 운동 역시 분노와 반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정부가 유류세 인상 방침을 철회했는데도 시위대들은 정권 퇴진을 외치며 매주 토요일 거리에 나서고 있다. 한때 세를 과시했지만 노란조끼 시위대는 ‘반대’만을 외치고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제도 정치권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당은 불만, 증오 등 유권자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200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의석이 없었던 극우 포퓰리즘 영국독립당은 난민 수백 명이 줄을 선 사진에 ‘한계점(breaking point)’이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를 내세우며 사람들의 증오심을 자극해 표를 얻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더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도 감정적인 반대 여론을 부추기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에 따르면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고 미래에 대한 기대가 적을 때 포퓰리즘과 반체제 정치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움직임들은 민주주의 가치에도 의문을 던지고 있다.

한편 메이 총리는 2일 ‘노딜 브렉시트’를 막기 위해 12일로 예정됐던 브렉시트 시기를 늦춰 달라고 EU에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코빈 노동당 대표를 만나 합의점을 찾겠다고 했다. 메이 총리가 ‘노딜 브렉시트’를 주장하는 같은 보수당의 강경파 대신 야당인 노동당과 손을 잡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브렉시트#민주주의#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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