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96년 만에 ‘12월 조기총선’이 실시된다. 여당과 야당 중 누가 의회의 과반 의석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의 향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영국 BBC 등에 따르면 하원은 29일 ‘12월 12일 조기총선 개최’를 골자로 한 단축 법안을 표결해 찬성 438표, 반대 20표로 가결했다. 앞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사진)는 이달 28일까지 총 세 차례 조기총선안을 하원에 상정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모두 부결됐다. 하지만 28일 EU가 브렉시트 시한을 내년 1월 31일로 연기하기로 결정하면서 영국이 아무 조건 없이 탈퇴하는 ‘노딜’ 위험성이 사라지자 제1야당 노동당을 비롯한 야당들이 조기총선 ‘동의’로 기조를 바꿨다.
이번에 통과된 조기총선안은 상원 승인을 거쳐 다음 달 2, 3일경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재가를 받으면 발효된다. 의회는 다음 달 6일 해산돼 12월 12일 총선을 향해 5주간 선거운동이 펼쳐진다. 크리스마스 시즌인 12월 총선은 1923년 이후 처음. 차기 총선은 2022년 열릴 예정이었다.
조기총선을 준비하는 여당과 야당 모두 셈법이 다르다. 존슨 총리와 집권 보수당은 하원 과반을 확보해 브렉시트 합의안 비준을 신속히 마무리하고 싶어한다. 현재 총 650석인 하원 의석 중 보수당 의석은 288석에 불과하다. 브렉시트 추진이 의회에서 번번이 좌절된 이유다. 존슨 총리는 이날 “브렉시트를 완수하기 위해 의회를 다시 채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인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은 조기총선을 통해 브렉시트 시행 자체를 다시 판단토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노동당은 관세동맹 유지를, 자유민주당은 EU 잔류를 당론으로 내세웠다. 야당이 과반을 차지하면 제2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도 시행될 수 있다. 조 스윈슨 자유민주당 대표는 이날 “브렉시트를 중단시킬 정부를 세울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어느 당이 과반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브렉시트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에 이번 총선은 사실상 ‘브렉시트 담판 총선’이라고 일간 가디언 등은 전했다. 현재로서는 집권 여당이 유리하다. BBC가 25일 보도한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보수당(36%)이 노동당(24%), 자유민주당(18%), 브렉시트당(11%)을 앞서고 있다.
다만 안심하긴 이르다. 2017년 총선에서도 보수당은 노동당보다 지지율이 20%포인트 높았지만 과반에 못 미치는 318석 확보에 그쳤다. 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투표율이 지난 총선(68.7%) 때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큰 것도 변수다.
여당이나 야당 모두 조기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면 현재와 같은 교착상태가 계속될 수 있다. 이 경우 노딜 브렉시트 우려가 내년 1월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영국 싱크탱크 국립경제사회연구소(NIESR)는 영국이 EU와 합의한 새 브렉시트 안을 이행하면 2029년까지 매년 700억 파운드(약 105조 원)의 손실이 발생하며 10년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3.5% 낮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과 EU는 앞서 영국령 북아일랜드가 법적으로 영국의 관세체계 적용을 받되 실질적으로 EU 관세 및 단일 시장에 남겨 두는 안에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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