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총선서 보수당 압승했지만 여야 출신 거물급들 줄줄이 낙선
역대 최다 女의원 220명 입성
“정치 지형이 바뀌었습니다. 그 신뢰에 보답하겠습니다.”
14일 영국 북부 세지필드에서 유권자들 앞에 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첫마디였다. 12일 총선에서 50여 년간 제1야당 노동당 텃밭이던 북부 지역 유권자들이 집권 여당인 보수당을 지지한 것에 대한 감사 표시였다. 한편으로는 이번 총선에 기성 정치에 대한 변화를 촉구하는 여론이 반영됐음을 강조한 것이기도 하다.
보수당 압승 못지않게 눈에 띄는 것은 거물급 정치인들의 줄 이은 낙선이다. 49년간 의원직을 이어온 데니스 스키너 노동당 의원은 역대 최장 기간 의원직 유지 기록을 코앞에 두고 낙선했다. 고용연금장관, 법무장관 등을 역임한 데이비드 고크 의원과 검찰총장 출신 도미닉 그리브 의원 등 굵직한 중진도 낙선했다. 자유민주당 최초 여성 대표인 조 스윈슨과 보수당과 연정을 이뤘던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 나이절 도즈 하원 원내대표마저 낙선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피로감에 더해 기성 정치에 대한 염증이 선거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브렉시트 찬반 여론이나 총선 직전 여야 지지율 격치는 5∼12% 정도로 의석수만큼 차이가 크지 않았다. 결국 거물 정치인 낙마나 ‘붉은 벽(red wall)’으로 불리던 노동당 텃밭에서 보수당이 승리한 것은 기성 정치를 바꾸려는 유권자의 ‘변화’ 염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총선에서 역대 최대인 여성 의원 220명(전체의 3분의 1)이 하원에 입성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선거로 내년 1월 31일 브렉시트 시행은 사실상 확정됐지만 영국이 완전히 EU를 떠나는 과정에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보수당은 이달 23일 전 브렉시트 합의안을 새 의회에서 통과시킬 방침이다. 하지만 내년 1월 말 브렉시트가 발효돼도 영국과 EU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전환기’를 두고 자유무역협정(FTA), 이민 문제, 안보 등 미래 관계에 관한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문제는 11개월 내 협상을 마무리 짓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총선 후 EU 정상들은 협상이 영국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제 영국은 경쟁자”라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영국 기업이 유럽 시장에 접근하려면 EU 기준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간 가디언은 “EU가 전환기를 2020년 이후로 미루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존슨 총리 역시 브렉시트 연착륙을 위해 전환기를 연장할 가능성이 있다.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 59석 가운데 48석을 얻어 독립을 추진할 기반을 마련한 것도 영국에는 과제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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