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과 가치, 자존감을 무너뜨린 사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심이 있었다면, 승객을 비롯한 타인에 대한 공공의식이 있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
12일 오후 서울서부지법 제12형사부 오성우 부장판사가 낮은 목소리로 이같이 양형 이유를 말하기 시작하자 피고인석에서 일어나 있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41)의 몸이 살짝 기울었다. 조 전 부사장 뒤에 서 있던 변호사 1명은 천장을 바라봤다. 오 부장판사는 계속해서 “조 전 부사장은 박창진 사무장(44), 승무원 김모 씨(28)로부터 아직 용서받지 못했다”며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이어 “징역 1년 실형을 선고한다”고 말하자 고개 숙인 조 전 부사장의 눈에선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 램프지역 지상 이동도 ‘항로 변경’
이번 사건의 최대 쟁점은 항공보안법상 ‘항로’를 무엇으로 볼 것인지였다. 공항 램프지역에서의 지상 이동도 항로 변경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조 전 부사장에게 적용된 혐의 중 형량이 가장 무거운 항공보안법상 항공기항로변경죄 적용 여부가 갈리기 때문이었다. 검찰과 변호인 측은 이 부분을 둘러싸고 치열한 법리 공방을 벌여왔다. 항공기항로변경죄는 최하 징역 1년에서 최고 징역 10년까지 처할 수 있는 무거운 범죄 행위다.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항로는 운항 중인 항공기가 이륙 전, 착륙 후 지상으로 이동하는 상태까지 포함한다”고 해석했다. 미국 뉴욕 JFK 공항 게이트를 잠시 벗어났다 돌아온 ‘램프 리턴’은 이륙하기 전이라 해도 항로 변경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조 전 부사장 측은 공판 과정에서 비행기가 되돌아간 구간은 주차장에 해당하는 주기장으로 항로가 아니며, 이동 구간도 약 17m 앞뒤로 움직인 것에 불과해 항로 변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조 전 부사장의 폭행 사실도 인정됐다. 조 전 부사장이 일등석 서비스 매뉴얼을 빌미로 폭언과 폭행을 했으며, 이 때문에 기내 안전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박 사무장이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고 봤다. 또 재판부는 “조 전 부사장이 박 사무장에게 내린 지시는 기장에게 위력을 행사한 것과 동일하다”고 판단했다. 조 전 부사장 측은 “기장이 책임을 지기 때문에 최종 판단은 기장의 몫이라 조 전 부사장의 책임이 낮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램프 리턴의 모든 책임은 조 전 부사장이 져야 한다는 뜻이다.
○ 반성과 용서 없어 실형 선고
재판부는 실형 선고 이유로 피해자의 용서와 진정한 반성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조 전 부사장의 반성문에는 “한 번의 잘못이 아닌 저라는 사람이 가진 인간적 부분과 관련됐고, 언론이 저를 미워하므로 앞으로 대한항공과 같은 길을 걸을 수 없다”며 “죄송하고 반성한다”고 적혀 있다. 여러 차례 반성문도 제출했지만 정작 피해자의 탄원서나 피해 합의서는 단 한 건도 제출되지 않았다. 이런 점 때문에 재판부는 “피고인이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조 전 부사장에게 실형을 선고한 오 부장판사는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의 판결을 여러 차례 내렸다. 지난해 8월에는 강용석 전 국회의원(46)의 아나운서 비하 발언 사건에서 “‘트러블메이커’로 이미 사회적 감옥에 수감됐다”고 꼬집은 바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최장 기간 파업을 주도한 철도노조 집행부에 무죄를 선고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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