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 흑인 소년 페버는 지난달 충북 청주의 외국인보호소에 갇혔다. 미성년자인 페버는 비좁은 방에서 20여 명과 먹고 잔다. 방에서 안이 훤히 보이는 화장실을 쓰니 짐승이 된 기분이다. 어렸을 때부터 앓은 천식이 심해져 숨쉬기가 어렵고 열도 좀처럼 내리지 않는다. 아침에 눈을 뜰 땐 숨이 턱 막혀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부모님 고향 나이지리아로 추방당하면 이 지옥보다 나을까?’ 동료들이 하나둘 쫓겨날 때마다 페버는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나이지리아는 아는 이 없는 외딴곳. 어린 동생들이 당장 어떻게 먹고살까 생각하면 이 땅을 떠날 수가 없다.
출입국관리사무소는 페버를 불법 체류자라고 부른다. 페버는 불법 체류를 선택한 적이 없다. 불법 체류자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을 뿐이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과 달리 한국에서는 부모가 미등록(불법 체류) 외국인이면 아이가 한국에서 태어나도 미등록자다.
페버가 학생일 때는 미등록 이주아동이어도 한시적 체류비자를 받아 한국에 머물 수 있었다. 하지만 올 초 순천공고를 나와 공장에 취업하자 법은 그를 보호하지 않았다. “동생들을 먹여 살리려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해도 소용없었다. 페버 가족은 당국의 강제퇴거명령에 이의 신청을 해놓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페버 같은 미등록 이주아동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받고 있다. ‘그림자 아이들’은 대부분 출생 기록이 없어 건강보험 혜택도, 학교에 갈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다. 성폭력, 가정학대에는 더 쉽게 노출된다. 피해를 당해도 미등록자임이 드러나 쫓겨날까봐 신고를 못하고 고통을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
이주노동희망센터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에 따르면 국내 미등록 이주아동은 2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외국인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제정한 ‘세계인의 날’이 올해 10주년(5월 20일)을 맞지만 정부는 미등록 이주아동의 통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인권법에 따라 미등록자여도 아동만은 인권을 지켜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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