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처럼 자란 나이지리아계 청년에게 법적으로 미등록(불법체류) 신분이라는 이유로 추방을 명령했던 정부가 법원의 추방 취소 판결에 대한 항소를 포기했다. 미등록자란 이유로 아동에게조차 엄격한 법의 잣대를 적용했던 정부가 인도적 가치를 고려해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를 계기로 추방의 두려움을 안고 국내에 숨어 사는 이른바 ‘그림자 아이들’에 대한 구제 방안이 마련될지 기대된다.
법무부는 지난해 4월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강제퇴거 및 구금을 명령했던 미등록 청소년 페버 씨(19) 사건에 대해 항소를 하지 않기로 결정해 페버 씨에 대한 추방 취소가 확정됐다고 11일 밝혔다. 페버 씨는 추방의 우려 없이 한국에 살게 됐다. 법무부는 페버 씨에게 어떤 체류자격을 부여할지 검토 중이다.
법무부는 항소 포기 사유 중 하나로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게 성장한 아이를 사회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접근이 필요하다는 법원의 판단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이러한 정부의 결정으로 성실하게 성장해온 미등록 아동들이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는 사례가 늘 것으로 기대했다.
그간 정부는 아이들이 ‘미등록’ 신분인 이유가 부모의 불법체류여도 추방을 명령했다. 법률사무소 메리츠의 김봉직 변호사는 “법무부가 법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던 관행에서 벗어나 당사자의 개인적 사정과 인권을 고려해 판단했다. 아동이 스스로 한국에서 형성한 정체성, 교육의 가치 등을 인정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페버 씨는 어릴 적 아버지가 비자를 연장받지 못해 추방당하자 어머니, 4남매와 함께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됐다.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어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았지만 수돗물로 배를 채우며 초중고교를 졸업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페버 씨는 초등학교 때 장학생으로 선정되고 중학교 때 표창장을 받은 데 이어 고교 재학 중 3개의 국가기술자격증을 취득할 정도로 매우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평가했다. 추방을 면한 페버 씨는 아직 적절한 체류자격을 주는 비자를 받지 못해 기부금에 의지해 가족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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