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커피는 ‘원활한 직무 수행’을 위해서 드리는 겁니다만, 모호하시다면 안 드셔도 됩니다.”
대한민국 사회에 대변혁을 일으킨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 일주일에 접어든 4일. 김영란법을 최초로 발의한 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의 성영훈 위원장은 인터뷰를 하러 권익위 서울종합민원사무소를 찾은 기자에게 커피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 대해 성 위원장은 김영란법을 관통하는 정신을 내세웠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겁니다. 스스로 판단이 잘 안 된다면 안 먹고, 안 받으면 되는 겁니다.” 다음은 성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김영란법 시행 일주일인데 변화가 느껴지나.
“되돌아갈 수 없는 변화가 시작됐다. 김영란법 시행 자체가 대한민국에 엄청난 충격 요법이었다. 인맥이 없으면 병원 수술까지 새치기당해야 하는 세상 아니었나. 법 시행 이후 모 기관에서 외부 강연을 해 달라며 ‘100만 원을 주겠다’고 하기에 바로 거절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국민의 자세 역시 지난달 28일(법 시행일)을 기점으로 완전히 달라졌다고 본다.”
―법에 저촉될까 두려워 민원인과의 정상적인 만남까지 거부하는 일부 공무원도 있어서 김영란법이 ‘직무유기’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는데….
“법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고, 혼란도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런데 이제 일주일 되지 않았나? 오래지 않아 한국 사회의 자연스러운 행동 규범으로 정리 정돈될 것이다. 모든 법은 시행 초기 ‘공포 마케팅’ 효과가 나타난다. 판례 1호가 되면 안 된다는 공포다. 이 법을 핑계로 공무원들이 민원인과의 만남을 피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는 식의 복지부동(伏地不動)의 생존 방식이 확산될 거란 우려를 많이 하는데, 이는 법 시행 초기에 불가피하게 거쳐야 할 성장통이자 청탁이 만연했던 우리 사회가 한동안 지불해야 할 비용이다.”
―공직자 등에게 적용되는 김영란법의 피해가 애먼 대리운전사, 골프장 캐디, 음식점 종업원에게 돌아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 문제는 고용시장의 합리적인 조정과 업태 변화 등을 통해 장기적으로 조정되고 해결될 것이다. 단기적인 부작용 때문에 법 자체를 폄훼해선 안 된다.”
―김영란법 신고 1호는 학생에게 캔커피를 받은 교수였는데….
“익명의 제보자가 한 ‘캔커피 신고’를 1호 신고라며 부각시키는 건 이 법을 희화화하고 폄훼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 교수가 학생에게 캔커피를 받기만 하면 불법인가. 성적 평가철에 받았다면 몰라도 사제지간의 정으로 준 건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최소한의 정까지 적발하려는 게 아니다.”
(성 위원장은 김영란법 시행을 두고 “사회 전체가 거대한 법 안에 갇혔다” “일상이 얼어붙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에 대해 “시행 초기의 불편함은 미래 세대에게 투명한 사회를 물려주기 위한 투자”라고 했다. 그는 “헤겔은 ‘법이란 사회가 모습을 다 갖춘 뒤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는데, 각종 부패에 얼룩진 한국 사회를 ‘보다 못해’ 나타난 법이 바로 이 법”이라고 강조했다. 김영란법이 당초 추구한 방향으로 발을 뗐다는 것이다.)
―신고 포상금을 타내려는 ‘란파라치’ 기승에 대한 대응책은….
“신고 남발을 막기 위해 서면·실명으로 신고하도록 했고, 육하원칙을 채워 증거자료까지 첨부하게 하고 있다. 란파라치라도 신고 요건을 갖춰 신고하면 막을 순 없다. 필요악인 셈이다. 다만 증거 없이 신고를 남발하면 무고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새누리당 박대출 의원이 인터넷 포털도 김영란법 적용 대상이 돼야 한다고 하는 등 법 시행 초기부터 ‘리모델링’ 요구가 이어지는데….
“법 개정 요구는 당연한 것이다. 지난해 법 통과 당시 ‘언론중재법 2조 12호에 따른 언론사’를 적용 대상으로 분류했다. 다만 포털은 2조 18호에 포함되는 만큼 지금 당장 법을 적용할 순 없다. 포털 포함 여부는 국회에서 정책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지 권익위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
―3·5·10 상한액을 인상하는 시행령 개정 계획이 있나.
“일각에선 한 끼 식사를 1인당 3만 원으로 제한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고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정반대로 ‘한 끼에 3만 원이나 하는 밥을 먹는 사람들이 있단 말인가’ 하며 놀라기도 한다. 각계 의견을 반영한 금액인 만큼 시행령 개정 시한(2018년 12월 31일) 이전엔 개정 계획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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