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언론이나 국회, 심지어 정부 내에서도 예상되는 문제점을 얼마나 많이 제기했나. 지금까지 손놓고 있더니….”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14일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청탁금지법 관련 태스크포스(TF)를 만들겠다고 발표하자 이렇게 일침을 놓았다. 동아일보만 하더라도 7월 8회에 걸쳐 ‘김영란법 필요하지만 이대론 안 된다’는 기획기사를 보도하는 등 여러 언론이 예상되는 문제점을 지적했고, 당시 제기한 문제점은 법 시행 이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모호한 직무관련성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문했다. 하지만 청탁금지법 주무 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는 오히려 오락가락하는 유권해석으로 혼란만 키웠다.
당장 성영훈 권익위원장은 1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제자가 선생님에게 캔커피를 주면 청탁금지법 위반”이라고 했고 “제자가 스승의 날에 선생님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줘도 법 위반”이라는 말까지 했다.
황 총리의 청탁금지법 TF는 이런 상황에서 나왔다. 권익위의 무리한 유권해석을 전면 점검하겠다는 것이다. ‘늑장 대응’이 아닐 수 없다. 황 총리는 청탁금지법 시행 하루 전인 지난달 27일 국무회의에서 “법 시행 초기부터 혼란을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권익위에서 면밀하게 모니터링을 해 달라”고 주문했다. 건국 이래 ‘최대 변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혼란이 예상됨에도 권익위에만 맡겨 놓은 채 손을 놓고 있었던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1일 국무회의에서 “청탁금지법의 부작용만 부각돼선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황 총리의 사후약방문식 처방조차 더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권익위에만 맡길 심산이었다면 권익위의 요구대로 인력이라도 늘려줬어야 했다. 권익위는 청탁금지법 시행을 앞두고 행정자치부에 73명의 증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권익위의 현재 조직 역량으로 법 시행 이후 각종 문의와 신고를 제대로 소화하기 힘들 것이란 여러 언론의 문제 제기를 무시하더니 뒤늦게 범정부 차원의 TF 구성에 나선 셈이다.
황 총리는 법무부 장관을 지낸 법률 전문가다. 법의 모호함이 어떤 혼란을 초래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인사다. 또 총리실의 핵심 업무는 부처 간 정책 조정이다. 청탁금지법의 조기 정착은 법률 전문가가 이끄는 정책 조정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줄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선제적 대응’은 없었다. 국민은 모두 예상하는 걸 왜 정부만 몰랐는지 무척 궁금하지만 정부 기관에 묻기도 머뭇거려진다. 여전히 ‘모호한 청탁’이라고 시비를 걸지 몰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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