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에 한우농가 울상… 완화·개정 요구 커졌다지만 부정부패는 과연 근절됐는가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면 1년밖에 안된 법 흔들지 말라
“우리나라에서 하는 일은 오래 견뎌내는 것이 없다” 서애 류성룡의 탄식 들리는 듯
오늘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속칭 ‘김영란법’이 시행 1년을 맞았다. 제정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고, 이후에도 찬반양론이 끊이지 않았지만 이 법의 시행으로 대한민국이 공정·투명한 사회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디뎠다는 역사적 의미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청탁금지법은 우리나라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공직사회와 교육계, 의료계, 언론계의 문화가 밑바닥에서부터 바뀌고 있다. 관공서에는 전별금이나 접대문화 등 부패를 유발할 우려가 있는 관행이 거의 사라졌고, 청렴 문화에 대한 공직자들의 감수성도 높아졌다. 학교와 병원에서도 촌지나 선물이 사라짐에 따라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환자와 의료인이 부담 없이 만나 업무를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기업은 접대비가 줄어들면서 갖가지 명목의 저녁 술자리가 사라지고 회사원들이 자기 계발을 하거나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여가 시간이 늘어났다는 소식도 들린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생기듯 부작용은 있게 마련이다. 식당을 운영하는 상인들은 손님이 줄었다고 울상이다. 난초나 카네이션을 재배하던 농가들이 폐업하거나 방아, 토마토 등 다른 작물을 재배하면서 갑자기 닥친 어려움을 견디고 있다. 각종 화훼류와 한우, 과일, 인삼 등의 매출액이 급감했고, 고급 식당 등 외식업체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탁금지법을 개정하자는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20일 서울변호사회와 국민권익위원회, 학계 관계자 등이 함께 ‘청탁금지법 시행 1년, 법적 과제와 주요 쟁점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농수축산물과 전통주에 한해 이 법의 적용을 배제하자는 방안부터 3·5·10만 원으로 규정된 음식물·선물·경조사비 상한액이 지나치게 낮으니 현실화하자는 방안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었다. 정부는 ‘청탁금지법의 영향을 종합적으로 분석·검토해서 필요하고도 가능한 대안을 내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국회에서는 다양한 내용의 개정안이 심사되고 있다.
지금 고칠 것인지, 아니면 계속 시행할 것인지, 고친다면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결정하기에 앞서 이 법의 제정 이유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청탁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현실 인식은 이랬다. ‘우리 사회에서 공직자의 부패·비리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여 공직 신뢰와 청렴성이 위기 상황에 처해 있고 이것이 공정사회 및 선진 일류국가로의 진입을 막는 최대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에도, 효과적으로 규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 이에 따라 포괄적 금지와 엄격한 단속으로 공공 분야에서의 부정청탁을 근절하고 공정한 직무 수행을 보장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이 법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힘이 실렸다.
로마 제국은 외적의 침공 때문이 아니라 내부의 부패로 망했다고 한다. 부정부패가 망국의 근원이라는 것은 역사의 냉엄한 교훈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용인할 수 있을 정도로 부정부패가 줄었는가? 부패를 차단할 수 있는 효율적 시스템이 충분하게 마련되었는가? ‘그렇다’고 큰 목소리로 대답할 수 없다면 청탁금지법은 유지돼야 한다.
물론 인간이 만든 제도는 완벽하기 어렵고, 법률도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 한다. 하지만 청탁금지법의 개정은 대한민국의 미래 발전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대 현안이다. 농어민이나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꼭 개정이 필요하다면 최소한의 보완이나 수정에 그쳐야지 부패 척결을 위해 마련된 기본 구조나 골간을 바꿔서는 안 된다. 국가의 기본질서를 정한 법률의 제정·개정은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제 갓 한 돌을 지난 시점에서 조급해하거나 서두를 일도 아니다.
서애(西厓) 류성룡은 임진왜란 중 관군을 지휘하여 왜적과 싸우면서 나라의 안위를 지키는 군국 기무가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세태를 개탄했다. “우리나라에서 하는 일은 무슨 일이든 오래 견뎌내는 것이 없다. 짧으면 한두 달이고 길어봐야 한 해를 넘기지 못해 중도에서 폐지되지 않는 일이 없다”, “아침에는 갑(甲)의 말을 좇아 일을 진행하다가 저녁에는 을(乙)의 말을 듣고 그 일을 폐지한다. 이러다가는 비록 한 세상을 마치더라도 한 가지 일도 이루어짐을 보지 못할 것이다.” 조선의 명운을 걸고 왜적에 맞섰던 서애의 탄식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부정부패라는 내부의 적과 싸우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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