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가 추진하는 무어사이드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에 한국형 차세대 원전 모델(APR-1400)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정부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국내에서 강하게 탈(脫)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와중에 해외에서는 21조 원 규모의 원전 수출을 추진하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탈원전을 실행에 옮긴다면 한국형 원전 수출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12일 한국전력 등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북서부 무어사이드 원전 건설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뉴젠’ 컨소시엄에 한국의 APR-1400을 채택해도 된다고 통보했다. 뉴젠 지분 60% 인수를 추진하는 한전이 한국형 원전을 설치하자고 강하게 설득하면서 APR-1400 도입이 유력해졌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이후 두 번째 한국형 원전 수출이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한전은 물론이고 정부에서는 관련 내용을 쉬쉬하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아직 확정된 게 아니라 말하기 조심스럽다”고 언급하지만 정부가 신고리 5, 6호기 건설 일시 중단을 추진하는 와중에 원전 수출 내용을 알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향후 원전 수출 길 역시 막힐 가능성이 커졌다. 무엇보다 정부가 주력 수출 모델로 밀고 있는 APR-1400이 논란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 수출을 추진 중인 APR-1400은 최근 건설 중단 여부로 논란이 되고 있는 신고리 원전 5, 6호기와 한전 컨소시엄이 UAE 바라카에 짓고 있는 원전에 도입된 모델이다.
영국으로서는 본국에서도 갈등이 빚어져 한국 정부가 직접 건설 중단을 지시한 원전을 굳이 수입해야 하는지 의구심을 품을 가능성이 크다. 원자로 부품 생산 자체가 다품종 소량생산 구조라 원전 건설이 중단될 경우 부품업체부터 사업이 중단되면서 ‘원전 생산체인’이 끊기게 된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한국이 원자력발전을 모두 멈춘다면 한국 원전을 수입한 UAE 등은 부품을 구하기 어려워진다”며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이 현실화된다면 한국의 원전 수출은 앞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 설비 용량은 350GWe(1GWe는 원전 1기 설비 용량)를 넘어서면서 역대 최대치를 나타냈다. 일본이 멈춰 놓은 원전까지 합치면 391GWe로 이 역시 역대 최대다. 전 세계 원전은 448기로 2015년(441기)보다 7기 늘었다. 새로 짓고 있는 원전은 총 61기로 이 중 20기가 중국에 건설되고 있다.
댓글 0